기후변화가 북미 대륙에 사는 잠자리 수컷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워싱턴대의 마이클 무어 교수 연구진은 지난 5일 미국립과학원회(PNAS)에 “온난화로 잠자리 수컷의 날개색이 옅어지면서 암컷과 짝짓기가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북미 대륙에 사는 잠자리 319종의 사진 수십만 장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기온이 낮은 곳일수록 잠자리 수컷의 날개색이 진하고 더 정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같은 종이 기온에 따라 날개 색이 달라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북미 대륙 전체에 걸쳐 사는 잠자리 10종에 초점을 맞췄다.
무어 교수는 일반인들이 2005~2019년 ‘아이내추럴리스트(iNaturalist)’ 사이트에 올린 잠자리 사진 2700여 장을 분석했다. 같은 종이라도 기온이 높은 해에는 날개 색이 옅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기온이 낮으면 색이 더 화려해졌다.
무어 교수는 “짙은 날개는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해 온도를 섭씨 2도까지 높여 잠자리에게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기온이 높으면 자연히 날개 색이 옅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기온이 높은 곳에서는 수컷들이 색이 옅은 날개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잠자리 암컷도 날개에 색이 있지만 기온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암컷은 대부분 나무 그늘에 숨어 있어 날개 색이 진해도 햇빛에 체온이 오를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수컷은 늘 암컷을 찾아 날아다니다 보니 햇빛을 바로 받기 쉽다. 그만큼 기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 있다.
잠자리 수컷이 기온 변화에 따라 날개 색을 바꾼 것은 당장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손을 퍼뜨리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컷의 날개 색은 암컷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데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암컷은 날개 색이 옅은 수컷은 매력이 없다고 보고 짝짓기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수컷의 날개 색 변화가 심하면 암컷이 아예 다른 종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무어 교수는 “이미 그런 일이 벌어져 이전만큼 번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