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균은 벼룩, 말라리아 원충은 모기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다./CDC , 위키미디어

코로나 백신이 인류를 위협하는 다른 전염병과도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 백신은 중세 흑사병을 부른 페스트를 막으러 나섰고,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앤테크의 코로나 백신은 매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를 이겨낼 백신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데노바이러스 백신으로 페스트 예방

영국 옥스퍼드대 백신 그룹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페스트 백신의 임상 1상 시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18~55세 건강한 남녀 40명에게 페스트 백신을 주사하고 부작용이 생기는지, 병원균에 결합하는 항체와 직접 병원균을 죽이는 T세포가 유도되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옥스퍼드 백신 그룹을 이끄는 앤드류 폴라드 교수는 “코로나 대유행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데 백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입증했다”며 “수천 년 동안 세계를 위협한 페스트가 지금도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어 새 예방 백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페스트는 쥐와 벼룩이 옮기는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유발하는 감염병으로, 종류에 따라 치명율이 30~60%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4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페스트 대유행인 흑사병으로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흑사병이라는 이름은 환자의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 때문에 붙여졌다.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뤼겔이 흑사병의 공포를 묘사한 '죽음의 승리'./프라도미술관

페스트는 지금도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서 환자가 발생한다. 2010~2015년 전 세계에서 3248명이 페스트에 감염돼 이중 584명이 사망했다. 2017년 마다가스카르에서 4개월 동안 2119명이 감염돼 17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중국에서도 페스트 환자가 나왔다.

백신은 병원체 자체나 그 유전자, 또는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이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코로나 백신처럼 인체에 무해한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ChAdOx1)에 페스트균의 유전자를 주입했다.

백신에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를 쓴 것은 옥스퍼드대가 처음이었다. 이전 백신은 사람에게 감기를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유전자 전달체로 썼다. 문제는 감기를 앓았던 사람은 사람에게 감염되는 아데노바이러스를 바로 제거해 면역효과가 낮다는 것이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인체에 생소한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독일 바이오앤테크의 코로나 백신 생산 모습. 바이어앤테크는 코로나 백신 방식으로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바이오앤테크

◇mRNA 백신은 말라리아 퇴치에 적용

독일 바이오앤테크는 mRNA(전령RNA) 방식의 말라리아 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미국 화이자와 함께 세계 최초로 mRNA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

바이오앤테크는 지난 26일 WHO, 유럽연합(EU)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mRNA 기술을 기반으로 한 말라리아 백신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내년에 임상시험에 착수해 2023년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이다. 바이오앤테크는 코로나 백신처럼 말라리아 원충의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할 계획이다.

아노펠레스 속(屬)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는 한 해 4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모기가 사람 피를 빨 때 옮겨간 기생 원충이 심한 고열과 오한을 유발하다가 심하면 목숨까지 빼앗는다. 지난해는 전 세계 방역 역량이 코로나에 집중된 탓에 약 77만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현재 상용화된 말라리아 백신은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모스키릭스 한 종뿐이다. 이 백신은 말라리아 원충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만든다. WHO는 말라리아 백신의 예방 효과가 최소 75%에는 이르러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모스키릭스는 36%에 그쳤다. 이 마저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해 접종한 지 7년 뒤에는 5%까지 떨어진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