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뇌기능이 점점 떨어진다. 무언가 하려고 했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아일랜드 과학자들이 뇌를 회춘(回春)시킬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젊은이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는 것이다.
아일랜드 코크대의 존 크라이언 교수 연구진은 9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노화’에 “늙은 쥐에게 젊은 쥐의 분변 미생물을 이식해 뇌를 다시 젊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뇌 학습영역 회춘, 미로 더 빨리 탈출
연구진은 사람으로 치면 청년에 해당하는 생후 3~4개월 쥐의 분변을 20개월 된 늙은 쥐에게 이식했다. 1주에 두 번씩 8주 동안 젊은 쥐의 분변 시료를 먹이자 뇌에서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인 해마가 물리적, 화학적으로 젊은 쥐와 같아졌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늙은 쥐는 해마에서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늘어나면서 미로(迷路)를 전보다 더 빨리 빠져 나오고, 학습 능력도 향상됐다.
크라이언 교수는 “마치 노화 과정의 버튼을 되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앞서 늙은 쥐가 젊은 쥐의 피를 수혈받고 뇌기능이 젊어졌다는 연구 결과는 있었지만, 젊은 쥐의 분변에 있는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입증됐다.
연구진은 뇌가 회춘한 것은 장내 미생물 덕분이라고 밝혔다. 젊은 쥐의 분변을 이식받은 늙은 쥐의 장내 미생물이 젊은 쥐와 비슷해졌다. 이를 테면 흔한 장내 미생물인 장내구균이 젊은 쥐처럼 늙은 쥐에서도 양이 많아졌다. 반면 늙은 쥐에게 같은 늙은 쥐의 분변 시료를 먹였을 때는 장내 미생물과 뇌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장내 미생물, 체중에서 치매, 코로나까지 관여
분변을 통해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는 시술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菌)’에 의한 치명적 설사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분변 미생물 이식의 적용 질환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내 미생물이 암이나 당뇨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졌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나 물만 먹어도 살찌는 사람에게는 고유의 장내 미생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심지어 우울증이나 자폐증, 치매 같은 뇌질환도 장내 미생물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앞 다퉈 장내 미생물을 치료제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고려대 김희남 교수는 코로나 중증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는 방법도 시도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미국 미생물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엠바이오(mBio)’에 발표한 논평 논문에서 “지난 1년 간 발표된 학술 논문들을 분석한 결과 장내 유익 미생물이 사라지고 장 누수가 발생하는 등 장 상태가 나빠지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연구도 한계는 있다. 동물실험 결과여서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기는 이르다. 또 젊은 쥐의 분변을 이식받고 뇌가 회춘한 반면, 사회성은 호전되지 않았다. 앞서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이 쥐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과 다른 결과이다. 분변을 이식하고 바로 장내 미생물의 차이를 비교해 젊은 쥐의 장내 미생물이 실제 늙은 쥐로 옮겨갔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