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헬기에 거꾸로 매달고 옮기는 모습./나미비아 환경부

코뿔소가 공중에 거꾸로 매달리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아이의 엉뚱한 질문 같은 호기심을 실제 실험으로 해결한 과학자들이 올해 이그(Ig) 노벨상을 받았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담긴 메시지를 분석한 연구자와 잠수함에서 바퀴벌레를 없애는 방법을 찾은 퇴역 해군 장교도 함께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지는 지난 9일(현지 시각) “코넬대의 로빈 래드클리프 교수 연구진이 헬리콥터로 코뿔소를 옮길 때 거꾸로 매단 자세와 엎드린 자세가 각각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비교하는 실험을 한 공로로 31회 이그 노벨상 교통부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 발표 한 달 전에 발표하는 일종의 ‘짝퉁 노벨상’이다. 이그는 ‘있을 법하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이라는 영어 단어의 약자다. 주최 측은 “사람들이 한바탕 웃고 나서 새로운 생각을 할 기회를 제공한 연구에 상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 대유행으로 온라인으로 개최됐는데, 실제 노벨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아놀드(201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칼 와이만(2001년 물리학상), 에릭 매스킨(2007년 경제학상) 박사 등이 시상자로 참여했다.

이그 노벨상의 마스코트인 '냄새나는 사람(The Stinker)'.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패러디했다./Ig Nobel

◇거꾸로 매달린 코뿔소는 혈액순환 좋아져

아프리카에서는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종종 서식지를 옮긴다. 코뿔소 같은 대형동물은 헬기에 매달아 이동한다. 래드클리프 교수는 “아무도 거꾸로 매달린 자세가 동물의 심장과 폐 기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지 않았다”며 “나미비아는 처음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기로 결정한 나라”라고 밝혔다.

코넬대 연구진은 나미비아 환경산림관광부의 도움을 받아 검은 코뿔소 12마리를 마취시키고 크레인에 매달아 신체 변화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코뿔소는 거꾸로 매달릴 때가 엎드린 자세보다 더 나은 것으로 밝혀졌다.

코넬대 연구진이 마취된 코뿔소를 크레인에 매달고 실험을 하는 모습./미 코넬대

연구진은 혈액 흐름이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코뿔소는 평소 몸 아래 부분에는 피가 많이 흘러가 가스 교환이 잘 이뤄지지만 윗부분은 피가 부족해진다. 코뿔소를 거꾸로 매달면 사람이 물구나무를 설 때처럼 혈액 순환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또 코뿔소는 엄청난 몸무게로 평소 뼈와 근육에 손상을 입기 쉬운데 거꾸로 매달려 다리에 압력이 없어지면 그런 문제에서도 해방된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래드클리프 교수는 “처음 이그 노벨상을 받는다고 들었을 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며 “하지만 상의 메시지가 ‘웃고 나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맞는 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지구라는 행성에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놀라운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과학자들은 고양이가 먹이를 원할 때는 울음소리 끝을 올리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조선일보 DB

◇부탁할 때는 울음소리 끝 올리는 고양이

다른 수상자들도 상상을 뛰어넘는 엉뚱한 연구를 했다. 올해 이그 노벨 생물학상은 스웨덴 룬드대의 수잔 스콜츠 교수가 받았다. 그는 2011년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담긴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고양이가 사료를 원할 때는 울음소리 끝을 올리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반대로 동물병원에 가는 날에는 스트레스를 받아 울음소리 끝의 음조를 내린다. 연구진은 30명에게 고양이 울음소리 녹음을 들려주면 음조만으로 대부분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확인했다.

올해 이그 노벨 곤충상은 미국 예비역 해군 중령인 존 멀리넌에게 돌아갔다. 멀리넌 중령은 1971년 인체에 해로운 산화에틸렌 대신 디클로르보스라는 살충제로 잠수함의 바퀴벌레를 퇴치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물리학상은 사람들이 군중 속에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 비결을 연구한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역학상은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걸을 수 있음에도 종종 충돌 사고가 생기는 원인을 찾은 연구자가 받았다. 충돌 원인은 휴대폰 사용이었다.

생태상은 도로에 붙은 껌에 사는 박테리아를 분석한 과학자가, 평화상은 수염이 안면에 가해지는 주먹의 충격을 줄인다고 밝힌 연구자가 각각 받았다. 의학상은 오르가슴이 코의 충혈을 풀어 호흡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화학상은 영화관의 공기에서 관람객의 체취를 분석해 관람 중인 영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 과학자가 수상했다. 경제학상은 정치가의 비만 정도와 부패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자가 받았다.

◇우리나라도 여러 수상자 배출

우리나라는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지만 이그 노벨상에서는 한국인 수상자가 여럿 있다. 1999년 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향기나는 정장’을 개발한 공로로 환경보호상, 2000년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1960년 36쌍에서 시작해 1997년 3600만쌍까지 합동 결혼시킨 공로로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 1992년 10월 28일 자정 세상의 종말인 휴거(携擧)가 온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는 2011년 이그 노벨 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미국 버지니아대의 한지원씨가 커피잔을 들고 다닐 때 커피를 쏟는 현상에 대해 연구한 공로로 2017년 유체역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