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 독일 바이온텍이 개발한 새로운 에이즈 백신이 임상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워낙 심해 백신 개발이 힘들기로 유명해 수십년 도전에도 성공한 적이 없다. 지난달 말 미국 존슨앤드존슨 계열사인 얀센은 아프리카에서 진행한 에이즈 백신 임상시험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얀센과 달리 모더나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한다. 모더나의 에이즈 백신이 코로나 백신에서 효능을 입증한 mRNA(전령리보핵산) 방식이기 때문이다. mRNA 백신은 코로나⋅에이즈 외에 독감⋅말라리아⋅뎅기열 같은 전염병과 흑색종⋅폐암 치료에도 적용되고 있다. 바야흐로 mRNA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료=PAHO, 그래픽=송수현

◇미국, 아프리카서 에이즈 백신 임상

모더나는 국제에이즈백신계획(iavi)과 비영리 연구기관인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와 함께 mRNA 방식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mRNA는 세포핵 밖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일종의 설계도로 쓰이는 유전물질이다. 이번 코로나 대유행에서 처음으로 mRNA를 이용한 백신이 상용화됐다.

일반적으로 백신은 병원체를 약하게 경험시켜 그에 대항하는 면역 단백질인 항체를 미리 준비하도록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이다. 보통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를 주입하거나 그 유전자를 인체에 무해한 다른 바이러스, 즉 벡터에 넣어 전달한다. 중국 코로나 백신이 죽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용하고, 얀센과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벡터 방식을 쓴다. 얀센의 에이즈 백신 역시 벡터 방식이었다.

mRNA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전염병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든 에이즈 바이러스든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독감 백신을 매년 새로 맞는 것도 새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벡터 방식의 백신은 세포나 달걀에서 배양해 몇 달씩 시간이 걸린다. 반면 mRNA는 화학합성으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그만큼 돌연변이에 빨리 대응할 수 있다.

모더나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결합할 때 쓰는 단백질 중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 부분을 공략했다. 이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인 mRNA로 백신을 만들었다. mRNA를 주입하면 면역세포인 B세포가 바이러스에 결합하는 항체를 만든다. 스크립스 연구소가 쥐와 인간 세포로 실험했더니 예상대로 면역반응이 유도됐다. 이달 중 미국에서 56명 대상 임상시험이 시작되며 내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르완다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암 예방용 맞춤형 백신도 개발 중

모더나와 미국 화이자, 독일 바이온텍은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mRNA를 직접 주입하는 백신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사실 mRNA를 백신으로 쓰는 아이디어는 1990년대부터 나왔지만 염증 반응을 막지 못해 상용화되지 못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드루 와이즈먼 교수와 커털린 커리코 박사 연구진은 2000년대 중반에 mRNA의 구성 분자 하나를 다른 형태로 바꾸면 면역세포가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커리코 박사는 독일 바이온텍에 합류해 현재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다. 이후 RNA를 지방으로 감싸는 기술이 추가돼 효소에 분해되지 않고 안전하게 세포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mRNA 백신은 당초 암치료용으로 개발됐다. 이번에 코로나 백신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암 백신 개발도 활기를 띠고 있다. 사실 암 중에는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것들도 있어 백신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B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암을 일으키고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

최근에는 바이러스가 유발하지 않는 암도 백신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랐다. 이른바 면역 항암 백신이다. 암세포에만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인체에 전달하면 암세포를 공격할 항체가 만들어진다. 바이온텍이 피부암인 흑색종에 대한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고, 독일 큐어백은 폐암을 공략하고 있다. mRNA 백신은 암환자 고유의 유전자를 전달해 맞춤형 치료까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영국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말라리아를 예방할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한 해 4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GSK 백신은 소량의 mRNA만 주입해도 몸 안에서 자가 증식하도록 했다. 바이온텍도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연합(EU)과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 들어갔다.

◇모든 독감 바이러스 막는 범용 백신

모더나는 모든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범용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독감 백신은 매년 새로 만든다. WHO가 그해 유행할 바이러스를 예고하면 독감이 유행하기 6개월 전부터 달걀이나 동물세포로 생산한다. 하지만 실제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예측한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어서 예방 효과가 이번 코로나 백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09~2020년 독감 백신의 평균 예방 효과는 43%였다. 2014~2015년 독감 백신은 예방 효과가 16%에 그쳤다.

모더나는 모든 독감을 막아낼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 바이러스 단백질 4가지를 동시에 공략했다. 단백질을 직접 주입하지 않고 mRNA를 전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더나는 동물실험에서 다양한 독감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효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밖에 펜실베이니아대의 드루 와이즈먼 교수는 생식기 헤르페스(음부 포진)를 차단하는 mRNA 백신을 개발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 일리노이대의 저스틴 리히너 교수는 매년 4억명이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를 공략할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인체에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 4종을 동시에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 큐어백은 광견병 예방용 mRNA 백신도 개발해 임상 1상 시험에 성공했다.

반도체 칩이 다양한 전자 기기를 탄생시켰듯, mRNA라는 원천 기술도 다양한 백신에 적용되고 있다. 이 점에서 mRNA 백신을 공학 혁신에 비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남편 우구어 자힌과 바이온텍을 공동 설립한 외즐렘 튀레치 박사는 지난 5월 네이처지에 “우리 회사의 과학자는 ‘면역 엔지니어’”라며 “mRNA 백신에서 엄청난 발전이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