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 / 그래픽=김하경

지난 1일 11시 34분(세계표준시 기준) 유럽우주국(ESA)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공동 개발한 우주 탐사선 ‘베피콜롬보’가 태양계 맨안쪽에 있는 가장 작은 행성인 수성을 스쳐 지나갔다. 베피콜롬보는 수성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담은 흑백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앞으로 다섯 차례 더 근접비행을 한 뒤 2025년 12월 수성 궤도에 진입할 예정이다.

탐사선이 보내온 수성 사진에 과학계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ESA의 베피콜롬보 운영 책임자인 엘사 몬타뇽 박사는 “마침내 우리의 목표 행성을 보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베피콜롬보가 수성 궤도에 안착하면 수성의 표면, 대기, 진화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에 나설 계획이다.

◇200㎞ 고도까지 수성 근접

베피콜롬보는 2018년 10월에 발사된 수성 탐사선이다. 우주선 이름은 우주 탐사 항법을 개발한 이탈리아 과학자인 주세페 베피콜롬보의 이름에서 따왔다. 1970년대 미국 매리너 10호, 2011년 미국 메신저호 이후 수성을 방문하는 세 번째 탐사선이다. 수성 궤도에 도달하려면 태양의 엄청난 중력에 맞서야 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구-목성 간 거리가 지구-수성 간 거리의 10배 정도 되지만 궤도에 도달하는 시간은 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베피콜롬보는 지구에서 근접통과비행(플라이바이) 1번, 금성 2번, 수성 6번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행성 근처에서 중력에 이끌려 갔다가 특정 지점에서만 엔진을 점화해 다음 행성으로 넘어간다.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연료를 아끼면서 수성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지난 8월엔 금성을 근접비행했고, 다음 수성 근접비행은 내년 6월이다.

이번 비행에서 탐사선은 수성에서 200㎞ 떨어진 곳을 지나면서 수성의 북반구를 촬영했다. 궤도 도달 전까지 주요 과학 카메라는 차폐돼 고해상도 이미지는 촬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탐사선 측면에서 장비 상태를 감시하는 저해상도 카메라 2대가 열려 있어 수성의 표면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에는 달처럼 울퉁불퉁한 분화구들이 포착됐다. 주변보다 부드럽고 밝은 둥근 지역은 루다키 평원이고, 폭 166㎞의 레르몬토프 분화구는 휘발성 성분이 우주로 빠져나가 밝게 보인다.

◇수성 표면과 자기장 비밀 풀까

베피콜롬보는 근접비행을 모두 마친 뒤 2025년 12월 정식 궤도에 진입해 수성의 비밀을 밝힐 예정이다. 수성은 알려진 바도 거의 없고 연구도 어려운 행성이다. 태양계 암석 행성 가운데 가장 탐사가 덜 된 곳이다. 우주 탐사선은 섭씨 350도의 뜨거운 열기를 견뎌야 하고 태양의 밝기 때문에 지구에서 관찰하기도 어렵다. 특히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문제는 수성의 핵에 관한 것이다. 수성의 핵은 전체 질량의 60%를 차지한다. 과학자들은 왜 수성의 지각이 그렇게 얇은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탐사선이 수성 궤도에 도착하면 ESA의 ‘수성 행성 궤도선’(MPO)과 JAXA의 ‘수성 자기장 궤도선’(MMO)으로 분리된다. 두 궤도선은 고도 480~1500㎞ 타원 궤도를 돌며 각각 독립적으로 수성 탐사를 시작한다.

유럽의 MPO는 수성의 지형을 지도로 만들고 표면 구조와 구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수성의 내부도 감지한다. MPO가 찍은 표면 사진과 과거 탐사선이 찍은 사진을 비교하면 표면의 구멍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성의 구멍은 열이나 태양 입자 때문이라는 것이 현재의 추측이다.

일본 탐사선 MMO의 최우선 목표는 자기장 연구다. 수성은 태양계에서 지구 외에 자기장을 가진 유일한 암석형 행성이다. 액체 상태의 핵이 자기장을 발생시켰다고 추정된다. 궤도선은 지금보다 더 정밀하게 자기장의 거동을 측정하고 태양풍과의 상호작용도 조사할 예정이다. 태양풍은 수성의 초미세 대기와 상호작용해 원자를 우주 멀리 내보낸다.

ESA 과학탐사 고문인 영국 엑서터대의 마크 매코크런 교수는 “베피콜롬보는 이전 탐사선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수성을 가까이서 관찰할 것”이라며 “수성의 수수께끼를 풀 진정한 기회”라고 BBC방송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