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색 바다에서 해마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그런데 꼬리에 하얀 줄이 달려 있다. 사람이 쓰다 버린 마스크에 걸린 것이다. 해마는 마스크가 가는 대로 떠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리스 사진작가 니코스 사마라스는 이 사진으로 올해 3500여 작품이 출품된 국제 해양 사진전에서 ‘올해의 환경 보존 사진작가’ 상을 받았다.
사마라스는 지난 8월 그리스 북서부 테살로니키에서 90분 거리에 있는 바다에서 이 해마를 만났다. 그곳은 그리스 유일의 해마 집단 서식지였다. 사마라스가 가까이 가서 보니 해마는 꼬리에 걸린 마스크 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고 바로 마스크 줄을 풀어 해마를 살려줬다고 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 같은 개인용 보호 장비(PPE)가 전 세계 야생동물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홍콩의 환경보호단체 오션아시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5억6000만개의 마스크가 전 세계 바다로 흘러갔다. 무게로 따지면 4680~6240t에 이른다. 이들은 한 해 800만~1200만t에 이르는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일부가 됐다.
바다로 흘러간 마스크, 장갑은 동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4월 네덜란드 레이던대의 멘노 실추이젠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동물 과학’에 전 세계에서 다양한 동물이 코로나 보호 장비 폐기물에 사고를 당한 모습을 전했다. 물고기는 라텍스 장갑 손가락에 끼어 죽고, 펭귄은 마스크를 삼키고 굶어 죽었다.
해마도 사진작가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해마가 수컷이었다면 배 속의 어린 물고기 1000여 마리도 같이 희생됐을 것이다. 해마는 수컷이 임신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암컷은 수컷의 배에 있는 보육낭에 알을 낳는다.
수컷 해마는 심지어 치어(稚魚)를 키우기 위해 태반까지 갖춘다. 호주 시드니대의 커밀라 휘팅턴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태반’ 10월호에 “임신을 하는 해마 수컷의 배에는 포유동물의 태반과 같은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빅밸리 해마 수컷이 임신을 하는 34일간 보육낭이 점점 얇아지고 혈관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포유동물의 태반에서 태아가 자라는 동안 일어나는 변화와 유사했다. 보육낭은 임신 말기에 가장 얇아지고 심하게 주름이 생겼다. 그만큼 새 혈관이 자랄 면적이 늘어났다. 보육낭은 새끼를 낳은 지 24시간 만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해마의 보육낭이 태반을 닮은 것은 수렴진화(收斂進化)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수렴진화는 고래와 물고기, 박쥐와 새처럼 전혀 다른 종이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외형이나 생활사 등이 비슷하게 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휘팅턴 교수는 “사람의 태반이 자궁에 있다면 해마의 태반은 복부 피부가 변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