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약이 되고 때론 독이 되는 두 얼굴을 가진 화학물질 중에서 약물만 골라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질병 극복에 도움을 준 과학자들이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6일 “베냐민 리스트(53)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53)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가 분자를 정밀하게 합성할 수 있는 비대칭 유기촉매를 개발한 공로로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베냐민 리스트, 데이비드 맥밀런

촉매는 화학합성에서 에너지가 덜 드는 지름길을 만들어 반응 속도를 높이는 물질이다. 대표적 촉매로는 금속화합물과 단백질인 효소가 있다. 금속 촉매는 화학반응 이후에 중금속 잔류 문제가 있었고, 효소는 단백질 크기가 커서 쉽게 인공 합성하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은 2000년 거의 동시에 비대칭 유기촉매라는 제3의 촉매를 개발했다. 이들은 중금속 문제가 없는 효소를 모방하되 단백질 전체가 아니라 그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을 목표로 삼았다. 유기촉매는 아미노산처럼 다른 물질과 잘 결합하는 탄소를 중심으로 산소, 질소, 황 등이 결합한 단순한 구조이다.

특히 비대칭 유기촉매는 아미노산과 마찬가지로 구성 성분이 같지만 왼손과 오른손 같이 거울 대칭 구조 중 한쪽 형태만 가진다. 따라서 이런 유기촉매를 이용하면 합성 물질 역시 거울 대칭 중 한쪽 구조가 된다. 이는 제약산업에서 부작용 없이 약효만 가진 물질만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 전까지 약은 구성 성분만 같으면 거울 대칭 구조와 상관없이 똑같이 취급했다. 그러다 보니 약이 독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표적 예로 1960년대 입덧 완화에 쓴 탈리도마이도는 한쪽 거울 대칭 구조는 약이 됐지만 다른 구조는 기형아를 낳게 했다. 비대칭 유기촉매는 그런 문제를 원천 차단했다.

현재 우울증 치료제로 쓰는 ‘듀록세틴’과 당뇨병 치료제 ‘시타글립틴’, 코로나 환자 치료에 쓰는 항응고제 ‘와파린’이 비대칭 유기촉매로 만들어진 대표적 의약품들이다. 약뿐 아니라 향수나 식품도 거울 대칭 구조에 따라 코와 입에서 다르게 인식된다. 역시 유기촉매로 원하는 향과 맛을 낼 수 있다.

노벨 재단은 유기촉매 덕분에 화학물질 합성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고 평가했다. 독극물인 스트리크닌은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화학물질로 알려졌는데, 유기촉매 덕분에 합성 속도가 7000배나 빨라졌다. 또한 희귀식물이나 심해생물에서만 극소량 합성되는 치료 물질도 대량 합성할 수 있게 됐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는 “정통 화학 연구에서 화학상이 나오기는 근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