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세균의 전자현미경 사진. 세균이 대장암에 걸린 생쥐의 장에서 암유전자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NIAID

세균이 실험동물의 장 속에서 암세포에만 있는 유전자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검사에서 진단하기 힘든 초기 암세포의 유전자까지 찾아낼 수 있어 암 조기 진단과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의 제프 해스티 교수 연구진은 최근 생명과학 논문 사전 공개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암진단용으로 유전자를 변형한 세균이 생쥐의 장 속에서 암세포에만 있는 유전자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돌연변이 유전자 찾으면 세균이 흡수

세균은 늘 주변 환경에서 DNA 조각을 흡수한다. DNA는 보통 먹잇감이 돼 분해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세균의 유전자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연구진은 주변 환경에서 DNA를 잘 흡수하는 ‘아시네토박터 베이리’라는 세균을 암진용 센서로 개발했다.

암 유전자 찾는 세균 /자료=UCSD

먼저 세균의 유전자 일부를 변형해 사람의 KRAS 유전자 돌연변이를 감지할 수 있게 했다. 세균은 정상 KRAS 유전자는 분해해 먹이로 쓰지만 암세포에 있는 돌연변이 KRAS는 자신의 유전자에 흡수한다. 암 유전자를 흡수한 세균은 항생제에 내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연구진은 대장암에 걸린 생쥐의 장에 암진단용 아시네토박터 세균을 주입했다. 나중에 생쥐의 대변을 채집해 항생제가 들어있는 배양액에 넣었다. 암에 걸린 생쥐에서 나온 아시네토박터 세균은 돌연변이 KRAS 유전자를 갖고 있어 항생제가 있어도 문제없이 자랐다. 반면 정상 생쥐에서 나온 아시네토박터는 항생제에 모두 죽었다. 세균이 암세포 유무를 확인해준 것이다.

암 유전자 찾는 세균 /자료=UCSD

◇암 진단, 치료 겸하는 세균도 연구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데이비드 리글라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내가 알기로는 유전자 변형 세균으로 살아있는 장에서 특정 DNA를 포착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암세포에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 DNA를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장에는 다양한 효소가 있어 암세포에서 나온 DNA가 바로 분해된다. 나중에 대변 검사를 해도 암 유전자를 찾기 힘들다. 연구진은 “DNA 진단이 장에서 바로 이뤄진다면 DNA가 파괴되기 전에 포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에 세균의 암 유전자 진단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항생제 내성 기반의 진단법을 활용했다. 앞으로 연구가 발전하면 세균이 암세포에만 있는 물질을 만나면 눈에 띄는 시각 신호를 내거나 인체에 무해한 다른 물질을 분비해 혈액검사에서 포착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또한 연구진은 세균이 암세포에서 나타나는 다른 유전자 돌연변이도 포착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이번에 진단한 KRAS 유전자 돌연변이는 대장암 환자의 13%에서만 나타나 암진단에 한계가 있다. 암 유전자를 흡수하면 세균이 치료물질을 내도록 만들어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