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주희

질병만큼이나 진단·검사하는 과정도 환자들에게는 고통이다. 과학자들은 환자가 좀 더 편하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피, 땀, 눈물을 검사에 이용하는 것이다. 피 한 방울로 암을 유발하는 변이 유전자를 찾아내거나 마이크로리터의 땀으로도 스트레스 수준을 파악하는 식이다. 과거에는 극미량의 액체 성분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최근 기술이 발전하면서 피, 땀, 눈물을 이용한 진단이 현실화하고 있다.

◇혈액 속 암 유전자, 원자현미경으로 감지

포스텍(포항공대) 박준원 교수 연구진은 “피 한 방울로도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일 밝혔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나노 레터스’에 지난달 발표됐다.

암에 걸리면 혈액에서도 암을 유발하는 변이 유전자가 발견된다. 적은 수의 변이 유전자를 검출하기 위해 PCR이라는 유전자 증폭 방법을 사용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연구진은 유전자 증폭을 하지 않고 ‘원자힘현미경’을 이용해 직접 피를 관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원자힘현미경은 시료에 탐침을 대고 이동시켜 표면을 확인하는 장치로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수준까지 측정 가능하다. 탐침 끝에 변이 유전자와 반응하는 단백질을 붙이면, 원자힘현미경에서 변이 유전자에만 다른 힘으로 반응한다. 실제로 췌장암 환자의 혈액에서 변이 유전자 1~3개를 찾아냈다. 박 교수는 “환자와 정상인을 가려내는 정확도는 100%에 가깝다”며 “기존 PCR 검사보다 시간, 비용, 성능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서울성모병원에서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이르면 3년 내에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 기술은 치매 조기 진단 분야 등 여러 질병 진단에 응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땀은 피보다 채취하기가 쉽다. 땀에는 나트륨, 칼륨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지만 건강 상태를 확인하려고 일부러 많은 양의 땀을 만들기는 어렵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은 센서 회사 엔리센스LLC와 함께 적은 양의 땀에서 바이오마커(몸 안 변화를 알아내는 지표)를 감지할 수 있는 패치를 개발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패치는 120㎟ 크기에 1~3㎕(마이크로리터, 1㎕는 100만분의 1리터)의 땀으로도 바이오마커 성분을 감지한다. 농도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는 전기적 신호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엔리센스LLC는 10명 대상 시험에서 스트레스 조절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포도당을 동시에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에 패치를 부착하면 실시간으로 땀을 분석해 만성 스트레스 같은 질환도 진단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콘택트렌즈 색 변화로 혈당 변화 확인

건강관리도 편해진다. 카이스트(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권경하 교수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김종욱 박사는 “땀의 양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무선 전자 패치를 개발했다”고 지난 5월 밝혔다. 웨어러블 장치에 적용하면 운동 전후의 탈수 증상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구진은 땀이 흐르는 통로 외벽에 저전력 열원을 배치해 땀과 열 교환을 유도했다. 땀이 흐르는 속도가 빠르면 상류와 하류의 온도 차가 커지는 원리를 이용했다. 이를 통해 땀의 양과 손실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

패치의 측정 결과는 무선으로 스마트폰에 전송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권 교수는 “무선 전자 패치는 개인별 수분 보충 전략, 탈수 증세 감지 등 건강관리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ˮ고 말했다.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의생명공학과 정의헌 교수 연구진은 “전극이 필요 없는 당뇨병 자가 진단 콘택트렌즈를 개발했다”고 지난 8월 밝혔다. 당뇨 환자들은 혈당을 체크하려면 매일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야 한다. 연구진은 눈물 속 포도당 농도에 따라 색이 변하고 인체에 무해한 나노 입자를 콘택트렌즈에 적용했다. 정 교수는 “기존 스마트 콘택트렌즈와 달리 전극 없이 색 변화로 당뇨병을 자가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