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가운데 붉은 부분이 유전물질인 RNA와 이를 감싼 단백질 복합체인 뉴클레오캡시드이다. 뉴클레오캡시드의 돌연변이가 델타 변이의 전염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NIAID

인도발(發) 델타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른 변이보다 두 배나 전염력이 강한 이유가 새로 밝혀졌다. 특히 복제가 불가능한 인공 바이러스로 밝힌 결과여서 앞으로 고가의 안전장치가 없어도 변이 관련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와 UC샌프란시스코의 멜라니 오트 교수 공동 연구진은 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염력이 강한 이유는 유전물질을 둘러싼 내부 단백질의 돌연변이 때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단백질 모두 갖춘 인공 바이러스로 실험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돌연변이가 전염력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를 숙주 세포에 결합시켜 침투한다. 과학자들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9가지 돌연변이가 생겨 인체 세포를 여는 열쇠의 효율이 더 높아졌다고 본다.

하지만 침투를 잘 한다고 전염력이 바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숙주 세포에 바이러스 유전자가 들어가 복제돼야 더 많은 바이러스가 생기고 다른 세포로 퍼질 수 있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다우드나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는 단백질에서 발생한 돌연변이가 유전물질을 숙주에 더 많이 전달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바로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단백질이 감싸고 있는 복합체인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이다.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숙주에 더 많이 전달되면 다른 세포로 퍼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코로나 바이러스 안쪽에는 유전물질인 RNA(노란색)이 단백질(분홍색)과 결합한 뉴클레오캡시드가 있다./미 조지아대

특히 이번 연구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를 안전하면서도 손쉽게 알아보는 방법을 개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강해 생물안전 3등급(BSL-3) 이상의 시설이 있는 곳에서만 연구가 가능하다. 또한 인위적으로 만든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에 대비해 무해한 다른 바이러스의 표면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만 만들어 실험한다. 하지만 이런 유사 바이러스는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아 연구에 한계가 있다.

다우드나 교수는 ‘바이러스 유사 입자(viruslike particles, VLPs)’라는 일종의 인공 바이러스를 이용해 뉴클레오캡시드의 돌연변이를 연구했다. VLP는 바이러스의 모든 단백질을 다 갖고 있지만 유전물질은 빠져 있다. 따라서 숙주세포에 결합하고 내부로 침투하지만 복제는 불가능하다. 록펠러대의 찰스 라이스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숙주 세포로 들어가는 편도행 차표와 같아 다른 세포로는 퍼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VLP에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 대신 형광을 내는 유전자 조각을 넣었다. 바이러스 유사 입자가 세포에 침투해서 빛을 더 밝게 내면, 그만큼 바이러스 유전물질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안쪽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빛이 더 강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해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에서도 잇따라 성과를 냈다./NIH

◇인체 세포에서 바이러스 생산량 51배 증가

그 중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203번째가 아르기닌(R)에서 메티오닌(M)으로 바뀐 R203M 돌연변이가 핵심이었다. 이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에 침투한 바이러스 유사 입자가 내는 빛이 원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10배나 세졌다. 영국발 알파 변이에 비해서는 7.5배, 브라질발 감마 변이보다는 4.2배나 강했다.

연구진은 생물안전3등급 시설에서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에 R203M 돌연변이를 유발하고 인체 허파 세포에 감염시켰다. 돌연변이 바이러스는 인체 세포 안에서 중국에서 처음 나온 원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51배나 더 많은 바이러스를 생산했다. 바이러스가 유전물질을 숙주세포에 더 잘 밀어 넣는다면 바이러스를 더 많이 생산해 전염력이 그만큼 강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UC샌디에이고의 샨 루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이번 발견은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했다”며 “코로나 바이러스의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을 공략하면 코로나 감염을 막고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특히 바이러스 유사 입자를 이용해 특수 안전시설 없이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든 단백질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연구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워싱턴대의 재스민 쿠북 교수는 “환상적이고 매우 강력한 연구 도구”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