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이 이어지면서 사람을 통해 코로나에 감염된 동물들이 속출하고 있다. 새로운 숙주가 된 동물은 바이러스의 저장소 역할을 할뿐 아니라 백신이 듣지 않는 강력한 변이를 출현시킬 수도 있어 방역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종간 감염(spillover)을 차단하기 위해 인공지능으로 코로나 감염 위험이 높은 동물을 예측했다. 실험과 현장조사를 통해 감염 위험이 확증되면 방역 강도를 높여 바이러스가 동물에게 퍼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지능으로 바이러스 결합력 예측
미국 캐리 생태계연구소의 바버라 한 박사 연구진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5400종의 포유류 중에 인간에게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동물 540종을 72% 정확도로 예측했다”고 지난 1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왕립학회보B’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코로나 바이러스기 세포 표면의 ACE2 수용체와 결합해 침투하는 것에 착안했다. 먼저 인공지능에게 ACE2 단백질의 염기서열이 밝혀진 동물 142종의 정보를 학습시켰다. 인공지능은 이 정보를 통해 ACE2 단백질의 3차원 형태를 예측하고 바이러스와의 결합 강도를 알아냈다. 바이러스와 ACE2 단백질이 강하게 결합할수록 감염 위험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ACE2 단백질 정보가 없는 다른 동물의 코로나 감염 위험도 예측했다. 연구진은 ACE2 단백질이 대부분의 포유동물에 존재하고, 생체에서 혈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몸 크기나 먹이, 신진대사 등의 생체정보를 통해 해당 단백질의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고릴라와 짧은꼬리원숭이처럼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 코로나 발원지인 박쥐와 함께 나무두더지, 나무늘보, 개미핥기, 천산갑이 가장 감염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근 아이오와주에서 80%가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진 흰꼬리사슴도 감염 위험도가 높은 동물로 예측됐다. 개, 고양이와 눈표범도 포함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예상치 못한 동물들도 코로나 감염 위험이 높게 나왔다. 전 세계에 2억 마리가 사육 중인 물소가 대표적이다. 또 밍크처럼 털을 얻으려고 사육하는 붉은여우, 미국너구리와 함께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흰오릭스와 아닥스 영양, 반달가슴곰, 재규어, 회색늑대도 포함됐다. 바버라 한 박사는 “코로나 종간 감염 가능성이 이처럼 높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을 유발하는 다른 바이러스보다 코로나 감염 위험종이 10배는 많았다”고 밝혔다.
◇인간과 접촉 경로 많은 동물들 꼽혀
연구진은 이번에 예측한 코로나 감염 위험 동물들은 집이나 농장에서 사람 가까이 살고 있거나 회색곰과 북극곰, 회색늑대, 산악고릴라처럼 종 복원과 보존을 위해 사람과 접촉이 가능한 종류들이었다고 밝혔다.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생태관광도 코로나 감염의 경로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은 농장 작업자나 동물 보호 요원처럼 코로나 감염 위험도가 높은 동물을 접촉하는 사람들은 백신 우선 접종자로 지정하는 식의 추가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잠재적 위험군 중에는 산채로 거래되는 동물도 많아 특별한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짦은꼬리원숭이와 반달가슴곰, 재규어, 천산갑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설치류 중에 사람 근처에 가장 많이 사는 집쥐는 감염 위험종에서 빠졌지만 동남아시아에 많은 논쥐나 말레이시아 들쥐는 코로나 위험 동물로 꼽혔다. 역시 코로나 감염이 가능한 고양이의 먹이가 될 수도 있어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일부에서는 이번 연구가 자칫 잠재 위험군에 오른 동물을 무분별하게 살처분하는 일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특히 사육 중인 동물이 그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덴마크 정부는 밍크가 코로나에 감염되고 다시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자 자국에서 사육 중인 1700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스콧 케니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과학매체 더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감염 가능한 종의 대상을 좁히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어디까지나 추가 검사가 필수적인 예측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며 “감염 위험이 높다고 나온 가축이 사실이 아닌 공포로 인해 부당하게 살처분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바비러 한 박사 역시 “이번 모델링 연구를 확증하기 위해서는 실험실 연구와 야외 추적 조사가 이어져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