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가 지구의 일상에서 벗어나 우주로도 진출하고 있다. 극한의 환경에서 우주비행사를 보호하고, 우주정거장과 우주선의 핵심 부품이 상하지 않게 도와준다. 이제는 센서 기능까지 더해져 우주 물체도 감지할 수 있다. 가벼우면서 튼튼한 우주 섬유는 민간인이 우주 여행을 하고 화성에 식민지가 들어설 미래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풍선처럼 펼치는 직물 우주정거장
섬유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옷은 물론이고 강도나 탄성 같은 물리적 성질을 개선하면 의료용·공업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기기가 발달하면서 소재와 기능이 개선된 섬유가 잇따라 개발됐다.
우주 섬유는 1960년대부터 쓰여왔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1967년 아폴로 1호가 시험 발사에서 불에 타면서 우주비행사 3명이 모두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안전한 우주복 개발에 착수했다. 나사는 듀폰과 협력해 ‘베타 천(Beta cloth)’을 만들었다. 초미세 유리 필라멘트를 꼬아서 실로 짜내고 테플론으로 잘 알려진 내열 소재인 ‘PTFE’로 코팅한 천이다.
베타 천은 녹는점이 섭씨 340도다. 불에 잘 타지 않으면서 내구성도 뛰어나다. 베타 천으로 만든 우주복은 열·자외선 차단 기능뿐 아니라 우주 먼지로부터 우주인을 보호한다. 현재는 개량된 직물로 우주복이 제작되고 있다. 베타 천은 국제우주정거장(ISS) 안팎과 우주왕복선, 화성에 있는 로버(탐사 로봇) 큐리오시티에도 부착돼 핵심 부품을 보호하고 있다.
섬유는 우주 개발을 더 쉽게 해준다. 우주항공기업 시에라네바다는 지난 10월 제프 베이조스가 이끄는 블루오리진과 섬유로 만드는 우주정거장 ‘오비탈 리프’ 계획을 밝혔다. 2030년 이전 퇴역하는 ISS를 대신할 정거장이다. 시에라네바다는 직물로 만든 ‘LIFE 서식지’라는 팽창식 모듈을 개발하고 있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8m에 3층 높이인 풍선 안에 우주인 4명이 머무를 수 있는 방과 실험실 등이 들어간다. 2019년 지상에서 만들어 테스트를 완료했다.
우주에 정거장을 건설하려면 40번 이상 오가며 부품을 조립해야 하지만, 팽창식 모듈은 간단하다. 모듈을 접어서 로켓에 보낸 뒤 우주에서 풍선처럼 펼치면 된다. 비글로 에어로스페이스란 우주기업도 나사와 함께 팽창식 모듈을 개발 중이다. 이런 건설 방식은 정거장뿐 아니라 달·화성 등에 우주기지를 건설할 때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은 우주 먼지도 섬유 센서로 감지
우주 섬유는 우주 환경 연구도 수행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은 우주 먼지를 감지하는 섬유 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연구진은 내년 2월 ISS로 발사 예정인 우주선 ‘시그너스 NG-17′에 개발 중인 섬유 센서를 실어 보낼 계획이다.
센서는 진동과 전하에 민감한 소재로 만들어졌다. 아주 작은 크기의 우주 먼지나 파편이 빠르게 센서에 충돌하면 신호가 나온다. ISS의 외부에 부착된 섬유는 6개월간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섬유 센서는 우주인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우주선이나 기지 바깥의 우주 날씨를 감지해 이를 토대로 내부의 조명·온도를 바꾸거나 우주복 안으로 촉각을 느끼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섬유 센서는 민감하면서도 다른 부품보다 가볍고 부피가 작은 장점을 가졌다. 이를 통해 레이저로 파악할 수 없는 아주 작은 크기의 물체도 측정할 수 있다. 연구진이 개발한 가로⋅세로 각각 10㎝인 직물은 최대 20개의 유성 충돌을 감지할 수 있다. 연구진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간 기원을 가진 우주 먼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MIT 연구진은 다양한 직물을 ISS에 보내 실험을 진행 중이다. 극한의 더위와 추위, 방사선을 견디며 어떤 변화가 있는지 밝혀낼 계획이다. 현재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실시간 촬영을 통해 직물 샘플의 변색을 확인했고, 내년 1월 지구로 샘플이 돌아오면 센서의 성능을 심층 평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