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잊혔던 아프리카의 발자국 화석이 당초 알려진 것처럼 곰이 아니라 370만 년 전 미지의 인간 종(種)이 남긴 흔적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인간 종의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다. 이번 연구결과가 맞는다면 서로 다른 인간 종들이 공존했다는 의미가 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의 제레미 드실바 교수와 오하이오대의 엘리슨 맥넛 교수 연구진은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370만 년 전 발자국 화석은 지금껏 알려진 것처럼 곰이 아니라 두 발로 걷는 인간 종이 남긴 것임을 확인했다”고 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루시와 공존한 인간 종의 흔적
1976년 영국의 고생물학자인 메리 리키 박사는 라에톨리의 A지역이라고 명명한 곳에서 366만 년 전에 생긴 발자국 화석 다섯 개를 발견했다. 메리 리키 박사는 남편인 루이스 리키 박사와 함께 도구를 쓰는 인간 종인 호모 하빌리스 화석을 처음 발굴했다.
발자국은 화산재에 남겨졌다가 시간이 가면서 단단한 바위가 된 상태였다. 연구진은 처음에 인간의 조상이 남긴 발자국으로 생각했지만 나중에 곰이 뒷다리로 일어서 걸어간 모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이 발자국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2년 뒤 A지역에서 1㎞ 떨어진 G지역에서 같은 화산재 층에 남겨진 발자국 화석 수십 개가 발굴됐다. 화석은 세 사람이 24m 거리를 걷는 모습을 남겼다. 이 발자국은 오늘날 사람의 발자국과도 흡사했다. G지역 발자국 화석은 390만~300만 년 전 살았던 인간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아파렌시스는 최초로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한 여성 인류 화석인 루시로 잘 알려졌다. 루시는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32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이다. 복원 결과 키 120㎝의 20세 전후 여성으로, 발 모양을 통해 직립보행을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루시라는 별명은 발굴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비틀즈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에서 땄다. 이번 연구결과가 맞는다면 370만년 전 아프리카에 루시와 함께 다른 인간종이 공존했다는 의미가 된다.
◇곰발바닥 아니라 사람이 남긴 발자국
맥넛 교수는 라에톨리 A지역의 발자국 화석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먼저 아메리카흑곰의 발자국과 비교했다. 맥넛 교수는 라에톨리 발자국과 발 크기가 비슷한 어린 곰 네 마리에게 메이플 시럽을 주며 두 발로 서도록 했다.
곰들이 남긴 발자국은 A지역 발자국과 달리 뒤꿈치가 좁고 발가락 길이가 다 비슷했다. 라에톨리의 발자국은 그보다 뒤꿈치가 넓었으며,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보다 컸다. 가장 가까운 발자국은 역시 오늘날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발이 좀 넓고 엄지발가락이 더 크다는 점을 빼면 거의 비슷했다.
연구진은 탄자니아로 가서 A지역에서 흙에 묻혀있던 발자국 화석을 다시 발굴했다. 이를 G지역의 아파렌시스 발자국과 비교했더니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A지역 발자국은 발길이에 비해 폭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 또 A지역의 발자국은 마치 오늘날 모델처럼 다리를 교차하면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는 식으로 걷는 형태였다. 곰이나 침팬지는 이처럼 발을 교차하면서 걷지 못했다.
맥넛 교수는 “A지역 발자국은 아파렌시스가 아닌 다른 인간 종이 남긴 것”이라며 “아프리카에는 여러 인간 종이 공존했다는 증거들이 많아 이번 발견이 놀라운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드 실바 교수는 “이번 결과는 당시 각기 다른 직립보행 실험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이번 발견이 인류 진화과정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발자국 5개만으로 새로운 인간 종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나왔다. 동물이 어떻게 걸었는지 확실하게 밝히려면 20개 이상의 발자국 화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A지역 발자국은 5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