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백내장 수술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30%나 치매에 덜 걸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력손상이 치매를 부른다는 이전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결과이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의 세실리아 리 교수 연구진은 “65세 이상 3000여명을 추적 조사했더니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7일 국제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저널(JAMA) 내과학’에 발표했다.
◇65세 이상 3000여명 8년 동안 조사
백내장은 우리 눈에서 카메라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뿌옇게 되면서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대개 50세 이후 발병한다. 가장 흔한 원인은 수정체의 노화다. 손상된 수정체를 인공 수정체로 바꾸는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
리 교수 연구진은 65세 이상 3038명의 의료기록을 통해 백내장과 녹내장 수술이 치매 예방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평균 8년 동안 추적 조사했다. 녹내장은 시신경에 이상이 생기거나 안압이 높아져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이다. 연구진은 참가자에 대해 2년마다 인지검사를 실시해 치매 여부를 판단했다.
조사 기간 동안 853명이 치매에 걸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중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가 709명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참가자의 45%가 백내장 수술을 받았는데 이들은 수술 이후 최소 10년 동안 치매에 걸릴 위험이 수술을 받지 않은 백내장 환자의 71%에 그쳤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백내장 수술 후 치매 발병 위험이 30%는 감소한 셈이다. 녹내장 수술을 받은 사람에서는 치매 발병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력 손상은 치매를 유발하는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중국 광둥의학원 연구진은 지난 9월 ‘영국 안과학 저널’에 “영국인 1만명 이상을 장기 추적한 결과 눈에 이상이 생기면 알츠하이머 치매가 발병할 위험도 60%까지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수면주기 회복돼 인지기능 향상
시력이 나빠지면 바깥 생활이 힘들어져 집에만 머물기 쉽다. 이러면 자연 뇌기능이 퇴화된다. 다른 가능성은 수면주기를 조절하는 생체시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망막의 신경세포는 특히 청색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백내장은 이 청색광을 차단한다.
리 교수는 “백내장은 청색광을 비롯해 망막에 도달하는 모든 빛의 질에 영향을 미치므로 백내장 수술이 신경세포를 다시 활성화시켜 인지능력 감소를 막는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 신약개발 재단의 설립자인 하워드 필리트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백내장 수술 환자는 눈에서 감각 신호 입력의 질이 높아지거나 인지능력과 수면 주기에 연관된 망막 세포를 자극하는 청색광이 늘어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연구는 임상시험이 아니어서 백내장 수술이 치매를 예방하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임상시험은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선별해 한쪽은 백내장 수술을 하고 다른 쪽은 안하면서 치매 발병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 또 백내장 수술은 건강할 때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원래 치매에 강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세실리아 리 교수는 한국계 과학자로 현재 워싱턴 의대 안과학과장을 맡고 있다. 서울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자랐다. 에모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14년 위싱턴 의대로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