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머크가 개발한 먹는 코로나 치료제 몰누피라비르./머크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머크의 먹는 코로나 치료제 ‘몰누피라비르(Molnupiravir)’를 승인하라고 권고했다. FDA가 자문위의 권고를 받아들이면 머크 치료제는 최초의 먹는 코로나 치료제가 된다. 먹는 치료제는 주사로 맞는 항체 치료제보다 감염 초기 환자들이 쓰기 편리하다.

하지만 머크 신약이 코로나 대유행을 끝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빛이 바랬다. 이날 자문위는 찬성 13표. 반대 10표의 근소한 차이로 승인을 결정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3일(현지 시각) “두 차례 임상시험의 상반된 결과와 함께 약 자체의 작용 원리가 인체에도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위원들이 승인을 주저했다”고 밝혔다.

◇입원 위험 절반 감소에서 30%까지 하락

항체 치료제는 코로나 중증 위험을 85%까지 줄인다. 하지만 1시간 이상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고 가격도 비싸 쉽게 복용할 수 있는 먹는 치료제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저개발 국가나 농촌 지역은 먹는 약이 훨씬 유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머크는 처음 몰누피라비르가 코로나 감염 환자의 입원 위험을 50% 줄인다고 밝혔다. 약효는 항체 치료제보다 떨어지지만 복용이 편리하다는 점에서 코로나 대유행을 끝낼 게임 체인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회사는 FDA 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입원 위험 감소율을 30%로 정정했다. 두 번 진행한 임상시험이 각각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머크 신약은 한번에 4알씩 하루 두 차례 5일간 복용한다. 총 40알을 먹는 것이다. 첫 임상시험은 762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에서 8월까지 진행했다. 두 번째 임상시험은 646명을 대상으로 8월에서 10월 사이 이뤄졌다. 임상 참가자는 80%가 유럽과 남미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5일 이내 코로나 감염 증상을 보였다.

첫 번째 임상시험에서 신약 복용 그룹은 입원이나 사망 위험이 가짜약 복용자보다 절반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두 번째 임상시험은 신약이나 가짜약이나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머크의 니콜라스 카트소니스 임상연구 담당 수석 부사장은 FDA 자문위에 회사는 상반된 결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자문위원들은 두 번째 임상시험은 전염력이 강한 델타 변이가 퍼진 뒤에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몰누피라비르가 델타 같은 변이에 효과가 떨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일부 위원은 임상시험 참가자의 인구, 지역 구성이 처음과 달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태아에 대한 부작용 우려도 제기

머크는 임상시험에서 두드러진 부작용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반면 과학자들은 몰누피라비르의 작용 원리가 장기적으로 인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머크 신약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RNA에 작용해 복제를 못하게 한다. 약물이 유전자에 직접 작용한다는 점에서 최근 나타난 변이처럼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변해도 약효에 변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자문위에 참가한 유타대의 상카르 스와미나탄 교수는 네이처에 “유전자 돌연변이를 초래해 더 위험한 변이 바이러스를 만들 수도 있다”고 밝혔다. 환자가 용량대로 약을 다 먹지 않으면 일부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살아남아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변이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환자 개인에게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복제를 차단하는 약은 인체에서 세포분열이 왕성한 혈액세포나 정자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점에서 자문위는 머크 신약은 18세 미만이나 임신 여성은 안전에 대한 자료가 더 나올 때까지 복용을 허용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이날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이 머크 신약을 설치류인 햄스터의 세포에 32일간 투여했더니 DNA에 돌연변이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5월 국제 학술지 ‘감염병 저널’에 실렸다.

이에 대해 머크는 임상시험에서 참가자의 몸에서 남아있는 바이러스가 없었으며, 햄스터 세포 실험에는 정량보다 더 많은 약을 투여했다고 반박했다.

화이자 코로나 신약 팍슬로비드./화이자

◇화이자 신약은 입원 89%까지 막아

뉴욕타임스는 이날 “연구자들이 앞으로 머크 신약을 투여한 환자의 건강을 장기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약 복용으로 암이 생기거나 기형아를 출산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크도 FDA자문위에 임신 중 몰누피라비르를 복용한 여성에 대한 추적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머크는 임상시험에는 임신 여성이나 수유 중인 여성은 배제했지만 신약 허가 후에는 그런 여성이라도 자발적으로 약을 복용할 수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머크 신약을 지난달 4일 허가했다. 방글라데시 제약사는 지난달 중순부터 머크 신약의 복제약을 시판하고 있다. 약효가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코로나와 싸울 신무기라면 일단 갖춰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행히 머크에 이어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두 번째 먹는 치료제 ‘팍슬로비드(Paxlovid)’는 감염 3일 이내 투여할 경우 입원 또는 사망 위험을 89%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이자는 지난달 16일 FDA 긴급 사용 승인을 신청했다.

메릴랜드대의 캐서린 셀리-라드케 교수는 머크와 화이자 신약을 섞어 쓰는 칵테일 요법이 바이러스 성장을 억제하고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을 늦출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네이처에 “바이러스가 여러 약의 조합에 내성을 발달시키기가 더 어렵다”며 “궁극적으로 칵테일 요법이 더 나은 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