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에 칩을 심어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이보그’가 더는 영화 속 일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 ‘브레인칩’ 연구가 한창이다. 이미 동물의 뇌에 칩을 심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하는 실험이 진행됐고, 시력과 언어능력을 잃었던 마비 환자들이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국내에서도 더 정밀하고 기능이 개선된 브레인칩이 개발됐다. 괴짜 사업가 일론 머스크가 앞으로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작동시키겠다고 말했던 것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시력 회복하고 의사소통도 가능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세운 뉴럴링크는 내년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할 것이라고 지난 6일 밝혔다. 머스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CEO 협의회에서 “2022년 척수를 다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첫 번째 시험을 진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럴링크는 2016년 설립된 뇌 연구 기업이다. 뇌에 전극을 심고 컴퓨터와 연결해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대로 컴퓨터를 작동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뉴럴링크는 지난해 8월 뇌에 전극을 심은 돼지를 공개했고, 올 4월에는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컴퓨터 게임을 했다고 밝혔다. 뇌에 이식된 브레인칩이 전기 신호를 읽고 이를 컴퓨터에 구현한 것이다. 이제는 브레인칩을 활용해 사지 마비 환자가 다시 걷거나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브레인칩은 난치성 뇌 질환 극복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유타대는 “시각장애인의 뇌에 이식한 미세 전극과 특수 카메라 안경으로 시각장애인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회복했다”고 국제 학술지 ‘임상 연구 저널’에 지난 10월 밝혔다. 연구진은 길이가 1.5㎜인 바늘이 96개 심어진 가로와 세로 4㎜ 크기의 칩을 환자 뇌에 이식했다. 카메라로 찍은 사물의 정보를 미세 전극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그 결과 16년간 시력을 잃었던 시각 장애인이 글자를 읽고 사물의 형태를 구분해냈다.
언어 능력을 잃은 환자도 브레인칩 덕분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연구진은 뇌졸중으로 15년 이상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인지기능은 정상인 환자의 뇌에 전극을 심었다. 환자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생성된 뇌의 전기 신호를 분석해 컴퓨터에 입력했다. 연구진이 “오늘 기분이 어때?”라고 묻자 남성은 “매우 좋다”고 답했다. 일반인이 말하는 속도보다 느리지만 분당 15개 단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앞으로 연구진은 의사소통 속도를 더 높일 계획이다.
◇브레인칩에 카메라 기능 추가
브레인칩의 기능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조일주 박사 연구진은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성을 측정하는 브레인칩에 어떤 세포에서 오는 신호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카메라 기능을 더했다”고 13일 밝혔다. 앞서 연구진은 신호를 읽으면서 동시에 약물과 빛을 전달할 수 있는 브레인칩을 개발해 왔다. 이번에는 그 기능을 더 개선한 것이다.
연구진은 뇌 신경활성을 측정하는 브레인칩에 카메라의 단위 소자인 포토다이오드를 고밀도로 집적했다. 과학자들은 뇌에서 작동하는 부위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형광물질을 이용한다. 기존에도 0.5㎜ 굵기의 광섬유로 형광신호를 시각화할 수 있었지만 광섬유 크기 때문에 뇌 표면만 가능했다. 게다가 전기적 신호와 반응이 느린 형광신호를 동시에 측정하기는 어려웠다.
연구진이 개발한 브레인칩은 전기신호와 형광신호를 동시에 측정한다. 또한 크기도 기존 광섬유의 30분의 1 수준이어서 뇌 안쪽 깊은 곳까지 넣을 수 있다. 연구진은 동물실험에서 여러 종류의 신경세포가 작동하는 모습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조 박사는 “브레인칩으로 뇌 신경세포 종류별로 역할을 알아내 특정 질환에 관여하는 세포를 자극하면 난치성 뇌 질환을 치료할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