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는 피부에 메티실린 항생제 내성균을 갖고 있다. 이 내성균은 메티실린 항생제가 나오기 160년 전인 1800년쯤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영 케임브리지대

항생제 내성균이 200년 전 고슴도치에서 자연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비슷한 병원균들이 자연에 존재하며 언제든 항생제 남용으로 가축과 사람에 옮겨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마크 홈스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이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인 1800년대 고슴도치에서 진화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항생제 나오기 160년 전 내성균 존재

황색포도상구균은 사람 피부와 코에 사는 무해한 박테리아다. 포도알처럼 생겼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가끔 피부와 내장에서 감염 증상을 일으킨다. 보통 항생제로 쉽게 치료되지만 그 중 MRSA는 항생제인 메티실린으로 죽일 수 없다. 대부분 병원에서 감염되는 항생제 내성균은 치료가 어렵고 심하면 목숨까지 앗아갈 수도 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지난 10여년 간 멧돼지와 황새, 뱀, 고슴도치 등 다양한 야생동물에서 항생제 내성균을 추적했다. 대부분 야생동물에서 항생제 내성균이 상대적으로 드물었지만 유독 고슴도치에서는 많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유럽 10국과 뉴질랜드에 사는 고슴도치 276마리에서 검체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리스와 루마니아·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의 고슴도치는 피부에 항생제 내성균이 없었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고슴도치는 66%가 항생제 내성균 양성 반응을 보였다.

고슴도치에 있는 항생제 내성균은1800년쯤 고슴도치에서 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1959년 페니실린 계열의 메티실린 항생제가 도입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유전자에는 시간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돌연변이가 생긴다. 연구진은 내성균의 돌연변이 비율을 근거로 연대를 추산했다.

고슴도치에 있는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도 드물지만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고슴도치와 접할 기회가 적다는 점에서 고슴도치가 직접 내성균을 옮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연구진은 고슴도치의 내성균이 가축을 거쳐 사람에게 전염됐다고 추정했다.

배양접시 가운데 있는 곰팡이는 항생물질을 분비해 황색포도상구균을 죽인다. 오른쪽이 박테리아가 죽어 깨끗해진 부분이다. 왼쪽은 항생제 내성균이 항생물질에도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영 케임브리지대

◇곰팡이와 무기경쟁하며 내성유전자 진화

그렇다면 항생제 내성균은 왜 나타난 것일까. 연구진은 고슴도치에서 벌어진 박테리아와 곰팡이의 무기경쟁이 내성유전자를 진화시켰다고 설명했다.

항생제 내성균을 가진 동물들은 피부에 항생물질을 분비하는 곰팡이도 갖고 있었다. 연구진은 곰팡이의 항생물질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제거되면 내성균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곰팡이를 이겨내기 위해 나중에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결국 항생제 내성균은 고슴도치 피부에서 곰팡이와 경쟁하며 같이 진화한 결과로 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인간이 쓰는 항생제도 사실 자연에서 유래했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 곰팡이로 뒤덮인 배양접시에 박테리아가 모두 사라진 것을 보고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했다. 홈스 교수는 “고슴도치는 천연 페니실린을 피부에서 분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항생제가 자연에 있다면 항생제 내성 또한 자연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아무리 새로운 항생제가 나와도 남용하면 효능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이다. 홈스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항생제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는 강력한 경고”라며 “자연에는 언제든 가축을 거쳐 사람에게 감염될 항생제 내성균의 저장소 역할을 하는 야생동물들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