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새로 발견된 식물이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이름을 얻었다. 디캐프리오가 이 식물의 서식지 보호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영국 왕립 큐 식물원의 마틴 칙 박사 연구진은 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피어제이(PeerJ)’에 “카메룬에서 발견한 식물 신종(新種)에 ‘우바리옵시스 디캐프리오(Uvariopsis dicaprio)’란 학명(學名)을 붙였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이 생물에 붙이는 이름인 학명은 분류 체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종명(種名)을 뒤에 두고,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속명(屬名)을 앞에 둔다. 종명의 디캐프리오는 바로 할리우드 배우의 이름이다.
◇벌목 반대 캠페인 이끈 공로 인정
줄기에 황록색 꽃이 피는 이 상록수는 카메룬의 이보(Ebo) 숲에서 처음 발견됐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작은 길옆에 수꽃이 핀 나무 한 그루만 확인됐다. 칙 박사는 “디캐프리오가 이보 숲의 벌목을 멈추게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명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보 숲은 고릴라와 침팬지, 숲코끼리(둥근귀코끼리) 같은 멸종위기 동물과 다양한 희귀식물들이 사는 원시림이다. 카메룬 정부가 2020년 이보 숲의 벌목을 허가하자 전 세계 과학자들이 멸종위기 동식물 보호를 위해 벌목 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청원했다.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과학자들의 청원 내용을 올려 수백만 명의 팔로워들이 벌목 반대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카메룬 정부는 이후 벌목 허가를 취소했다.
우바리옵시스 디캐프리오는 잠정적으로 위급종으로 등재됐다. 위급종은 이미 절명했거나 야생에서 절멸한 다음으로 멸종위기 정도가 심한 종을 일컫는다. 하지만 아직 이 식물이 사는 이보 숲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확실한 보호장치가 마련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칙 박사는 “벌목 허가 취소는 집행유예를 받은 것과 같다”고 밝혔다.
◇조커 거미와 오바마 물고기도
과학자들은 종종 신종에 유명인의 이름을 붙인다. 자연보호와 과학발전에 기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공을 기리거나 유명인을 통해 연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다. 디캐프리오는 1998년 환경보호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웠으며, 2016년 유엔으로부터 환경보호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디캐프리오의 이름이 학명에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필리핀과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처음 발견한 수생 곤충에 ‘그루벨리누스 리어나도디캐프리오이(Grouvellinus leonardodicaprioi)’라는 학명을 붙였다. 시냇물에 사는 이 곤충은 몸길이가 채 3㎜도 안 된다. 연구진은 “아무리 작은 곤충이라도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디캐프리오의 이름을 땄다”고 밝혔다.
다른 배우도 학명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캐프리오와 연인으로 나왔던 여배우 케이트 윈즐릿 역시 코스타리카의 밀림에서 처음 발견된 딱정벌레 ‘아그라 케이트윈즐리태(Agra katewinsletae)’에 이름이 들어갔다.
지난 2020년 이란에서 발견된 거미 신종에는 영화 ‘조커’의 주인공인 호아킨 피닉스의 이름이 붙었다. 바로 ‘루리디아 피닉시(Loureedia phoenixi)’이다. 영화에서 피닉스는 흰 얼굴과 붉은 입술의 피에로 분장을 했다. 피닉시 거미는 배 위쪽에 조커의 얼굴 사진을 붙인 듯 희고 붉은 무늬를 갖고 있다. 속명도 1960년대 뉴욕에서 활동하던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더인 루이스 앨런 루 리드의 이름을 땄다.
대통령도 학명에 등장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환경 보호와 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해 무려 9종에 이름이 들어갔다. 대통령으로는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7종)를 넘는 역대 1위 기록이다.
이를 테면 하와이 산호초에서 새로 발견된 열대어는 파파하노모쿠아키아 해양보호구역을 확장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토사노이데스 오바마’로 명명했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발견된 신종 물고기엔 ‘오바마오룸’이란 종명이 붙었는데, 오바마와 아내 미셸이 함께 아프리카의 과학 교육과 환경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기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