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했다. “장기 이식 의학의 역사적 분수령”이란 평가가 나온다. 사람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처음으로 성공하면서 만성적인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돼지 장기는 사람과 크기나 해부학적 구조가 비슷해 면역 거부반응만 극복하면 환자에게 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진은 10일(현지 시각) “말기 심장병 환자인 57세 남성 데이비드 베넷이 면역 거부반응이 없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심장을 이식받고 사흘째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수술받은 지 3일 지난 현재 베넷은 심장 박동과 혈압이 정상”이라며 “이번 수술로 유전자를 변형한 동물의 심장이 급성 거부반응 없이 사람 심장처럼 기능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돼지 심장, 이식 3일 뒤 정상 기능
베넷은 치명적 부정맥 때문에 입원해 6개월 이상 심장과 폐를 우회해 산소를 공급하는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크모)로 연명해왔다. 메릴랜드 대학병원을 비롯해 여러 병원에서 ‘심장 이식 불가’ 판정을 받았다. 베넷은 수술 전날 “돼지 심장을 이식받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고 나는 살고 싶었다”고 밝혔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번 긴급 수술을 허가했다.
베넷에게 이식한 돼지 심장은 미국 바이오 기업 리비비코어가 제공했다. 이 회사는 돼지에게 유전자 교정과 복제라는 두 가지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했다. 먼저 유전자 가위(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로 면역 거부반응을 유도하는 유전자 3개가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인체의 면역 체계에 순응하도록 돕는 인간 유전자 6개는 추가하고 이식한 심장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성장 유전자 하나는 기능을 차단했다. 이렇게 유전자를 교정한 세포를 복제해 이식용 장기를 공급할 돼지 수를 늘렸다.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걸음 가까이 간 획기적 수술”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장기 이식 대기자는 현재 약 11만명이며 매년 6000명 이상이 이식 수술을 못 받고 숨진다. 과학자들은 동물 장기 이식, 특히 미니 돼지를 최적의 대안으로 꼽는다. 미니 돼지는 다 자라도 일반 돼지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몸무게는 60㎏으로 사람과 비슷하고 심장 크기도 사람 심장의 94% 정도다. 해부학적 구조도 흡사하다. 새끼도 많이 낳아 장기 대량 공급에 유리하다.
◇이식용 장기 부족 해결할 대안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부분 이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돼지 심장 판막은 최근 몇 년 사이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고 있다. 당뇨병 환자가 돼지 췌장 세포를 이식받은 경우도 있고, 돼지 피부도 화상 환자에게 임시로 이식된다.
문제는 인체 면역 체계가 이식받은 동물의 장기를 공격하는 것이다. 1980년대 미 캘리포니아대에서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에게 원숭이 심장을 이식했지만 면역 거부반응으로 한 달도 안 돼 사망했다. 과학자들은 동물에서 거부반응과 관련된 유전자를 변형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돼지 수정란에 사람 줄기세포를 이식해 아예 돼지 몸에서 사람 장기가 자라게 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자칫 사람의 의식을 가진 동물이 탄생할 수 있다는 윤리 논란으로 단기간에 실용화는 어려워 보인다.
국내에서도 이종 이식 전문 기업 제넨바이오가 서울대·가천대 연구진과 함께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무균 돼지의 췌도를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신청했다. 시험이 승인되면 무균 돼지의 췌도를 인슐린 생산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할 계획이다. 생명공학 기업 옵티팜은 면역 거부 반응을 유발하는 물질을 제거하고 사람 유전자를 삽입한 돼지에서 얻은 신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했다. 옵티팜은 “이 원숭이는 86일 생존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