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연구진은 2000년 전 이집트 소녀의 미라(C)를 CT로 찍어 왼발에서 상처 부위를 감싼 붕대(화살표 실선)와 그 속에 말라버린 고름(점선)을 확인했다(A, B)./이탈리아 미라연구소

첨단 의료 영상 기술이 이집트 미라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붕대 속에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 미라 연구소의 알버트 징크 소장 연구진은 “2000년 전 죽은 소녀의 미라에서 고대 이집트인이 상처를 붕대로 감아 치료한 증거를 찾았다”고 ‘국제 고병리학 저널’ 최신 호에 밝혔다.

이집트인들은 6000년 전부터 시신을 아마포로 감싸 미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려고 붕대를 감은 흔적은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독일 베를린의 이집트박물관에 있는 소녀 미라를 컴퓨터 단층 촬영(CT) 기술로 조사했다. CT는 인체를 수백 장의 고해상도 평면 X선 영상으로 분할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미라의 붕대를 풀지 않고도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소녀는 로마가 지배하던 1세기 이집트에 살았으며, 사망 당시 나이는 2.5~4세로 추정됐다.

CT 영상에서 왼발 부분에 원뿔처럼 부풀어 오른 곳이 나타났다. 그 안쪽에도 비슷한 형태가 보였다. 연구진은 소녀가 죽기 전에 고름이 찬 상처 부위를 붕대로 감싼 흔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3600년 전 의료 기록인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상처를 감쌀 때 붕대를 사용했다. 이번에 그 실물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로저 포어쇼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에는 상처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다고 나오지만 그 증거가 없었다”며 “이는 고대 이집트인이 상처를 붕대로 감싸는 것의 가치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증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다리의 상처가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시신을 방부 처리하면서 상처를 감싼 붕대를 남긴 이유도 불분명하다. 징크 소장은 방부 처리 도중에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이집트 카이로대의 사하르 살림 교수 연구진도 CT로 3500년 전 이집트를 다스렸던 아멘호테프 1세 파라오의 미라 내부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집트 연구진은 CT 영상으로 파라오의 얼굴과 치아, 머리카락 형태를 확인했으며, 뼈 구조로 사망 당시 나이가 35세이며 키가 169㎝라는 사실도 알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