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간질)에 걸려 수시로 발작을 일으키던 바다사자가 돼지 뇌세포를 이식받고 치료됐다. 최근 심장병 환자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한 데 이어, 돼지 뇌세포도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스콧 바라반 교수 연구진은 지난 4일 트위터에 “크로넛이 뇌수술을 받은 지 이제 거의 16개월이 지났다, 2022년도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돼지 뇌세포 이식후 1년 이상 건강
연구진이 말한 크로넛은 7살짜리 바다사자이다. 2017년 해변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크로넛은 해조류가 분비하는 독성 물질에 뇌가 손상돼 뇌전증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다.
뇌전증은 뇌세포에서 전기신호가 폭증하면서 근육 경련을 유발하는 질병이다. 의식을 잃고 장과 방광 기능을 통제하지 못한다. 미국 뇌전증재단에 따르면 미국에만 최소 100만명의 뇌전증 환자가 있다.
바라반 교수는 지난 2020년 크로넛의 뇌에 돼지 뇌세포를 주입하는 수술을 해 크로넛의 생명을 구했다. 2000년 10월 6일 크로넛의 수술을 위해 신경외과의와 수의사, 뇌과학자 등 18명이 모였다. 바라반 교수는 앞서 뇌전증 생쥐에게 뇌세포를 이식해 치료한 경험이 있지만 크로넛처럼 대형 동물을 수술한 것은 처음이었다.
의료진은 크로넛의 뇌에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을 입고 크기가 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바라반 교수는 크로넛의 해마 왼쪽에 돼지 뇌세포 5만여 개를 주입했다. 연구진은 뇌세포 이식 수술로 크로넛의 뇌 손상이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발작을 예방할 수는 있었다고 밝혔다.
크로넛을 보살피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한 테마파크는 수술 전 한주에 11번이나 발작을 해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뇌수술 후에는 발작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바라반 교수 연구진은 크로넛이 지금은 먹이도 잘 먹고 체중도 정상이라고 밝혔다.
◇뇌 부작용과 거부감 극복해야
과학자들은 치료제가 듣지 않는 뇌전증 환자에게도 크로넛과 같은 치료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앞서 2017년에는 파킨슨병 환자에게 돼지 뇌세포를 이식한 바 있다.
유타대의 카렌 윌콕스 교수는 지난 5일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인터뷰에서 “매우 가망성이 있는 접근”이라며 “크로넛이 이식받은 세포가 발작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뇌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존 치료제도 발작을 유발하는 부위에 작용하지만 뇌 다른 곳에서 부작용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뇌세포 이식도 그런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파킨슨병 환자에게 이식한 돼지 뇌세포는 다른 세포와 융합되지 못하고 죽었다. 또 심장이나 신장 같은 장기와 달리 뇌세포는 인간의 인지 기능과 연관돼 있어 이식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할 수 있다.
바라반 교수는 앞서 대학 교지 인터뷰에서 “세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식한 세포가 원래 뇌와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는지 등등 연구해야 할 게 많다”며 “그래도 당장 내년에 간질 환자에게 세포 이식 치료가 이뤄지진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임상에 적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