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에 이어 먹는 치료제까지 나오면서 2년 넘게 이어온 코로나 대유행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뒤 나타나는 ‘만성 코로나(Long COVID-19) 증상’이다. 바이러스가 몸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피로와 무기력증, 호흡곤란, 불안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어 일상 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치료약도 백신도 없는 미스터리 코로나에 전자약(electroceutical)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경에 전기자극을 줘서 만성 코로나 증상을 치료하자는 것이다. 전자약이 만성 코로나 치료에서 효능을 입증하면 다른 질병 치료로도 확산해 수십조원의 새로운 의료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헤어밴드, 모바일기기로 재택 치료
만성 코로나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미국 뉴욕대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감염자의 25%가 한 달 이상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인구에 대입하면 600만명의 만성 코로나 환자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정부는 100만명이 만성 코로나를 겪으며, 그중 4만명은 감염 후 1년 이상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게 현실이다.
과학자들은 만성 코로나 증상이 상당 부분 인지 기능이나 통증과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전자약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대 의대의 리 샤르베 교수 연구진은 2020년 만성 코로나 환자에게 전자약 임상시험을 했다. 환자들은 집에서 소테릭스사(社)사가 개발한 헤어밴드 형식의 뇌 자극 장치를 끼고 하루에 20분씩 치료를 받았다. 연구진은 전자약의 효과를 확인하고 대규모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대의 마크 조지 교수 연구진도 같은 해 만성 코로나 환자 20명에게 전자약을 시험했다. 이번에는 뇌가 아니라 귀의 미주신경(迷走神經)을 자극했다. 미주신경은 뇌와 장기 사이를 오가며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통로다. 환자들은 집에서 1주일에 6일간 하루 1시간씩 치료를 받은 뒤 뇌에 마치 안개가 낀 것 같은 멍한 상태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 연구진도 20명에게 한 번에 35분씩 10일간 미주신경을 자극했더니 피로와 우울증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전자약으로 뇌를 자극하면 신경세포 연결이 늘어나면서 이상 증상이 감소한다고 추정한다. 미주신경을 자극하면 염증이 줄어 치료 효과를 낸다고 본다. 현재는 성별이나 나이, 인종, 병력에 상관없이 시험하고 있지만, 앞으로 연구가 발전하면 전자약 형태에 따라 효과가 큰 환자군을 선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환자의 입원 기간 단축도
전자약은 급성 코로나 환자 치료에도 쓰이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20년 일렉트로코어의 미주신경 자극기를 호흡 곤란을 겪는 급성 코로나 환자에게 쓸 수 있도록 허가했다. 브라질 파라이바 연방대는 지난해 7월 코로나 중증 환자가 소테릭스의 뇌 자극 전자약 치료를 받고 인공호흡기 사용 기간이 줄면서 퇴원이 빨라졌다고 밝혔다.
전자약의 미래는 밝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40년까지 인류의 건강을 개선할 혁신 기술 10가지 중 하나로 전자약을 꼽았다. 지난해 시장조사 기관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는 2019년 약 211억8000만달러(25조2000억원)였던 글로벌 전자약 시장 규모가 매년 7.67% 성장해 2027년에는 367억달러(43조67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해외에서는 파킨슨병·뇌전증에서 비만과 수면 무호흡증, 장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에 대해 전자약들이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헤어밴드 형식의 우울증 전자약이 시판 허가를 받았다.
코로나는 전자약의 보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자약 업체 소테릭스 창업자인 뉴욕시립대의 마롬 빅슨 교수는 지난 5일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의 스펙트럼지에 “만성 코로나 환자 수백만 명이 집에서 전자약을 쓴다면 앞으로 다른 (질병으로 향한) 문도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