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쏘아 올린 우주 로켓이 오는 3월 달에 도착한다. 원래 예정된 달 탐사가 아니라 과거 로켓의 잔해로 인한 예상치 못한 충돌이다.
천문학 연구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빌 그레이는 “4톤 무게의 팰컨9 로켓 잔해가 3월 4일 7시25분(미국동부시간, 한국 시각 21시25분) 달 뒷면에 충돌해 20m 크기의 충돌구를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난 21일 블로그에 밝혔다.
그레이는 소행성과 혜성 궤도 계산에 쓰는 소프트웨어인 ‘프로젝트 플루토’를 개발했다. 하버드대의 조너선 맥도웰 교수도 26일 트위터에서 3월 4일 충돌이 맞는다고 확인했다. 맥도웰 교수는 “로켓 상단부는 죽은 상태로 중력 법칙만 따르고 있다”라며 “지난 수십 년간 50개 이상 대형 우주물체를 추적하다가 놓쳤다”고 말했다.
◇2015년 기후 관측 위성 발사한 로켓의 일부
이번에 달과 충돌하는 로켓은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가 2015년 미해양대기청(NOAA)의 ‘심우주 기후 관측 위성(Deep Space Climate Observatory)’을 발사할 때 쓴 팰컨9 로켓의 상단부이다. 그레이는 “충돌 시간이나 장소에 일정 부분 불확실성이 있지만 로켓 잔해가 달과 충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시간은 몇 분, 거리는 몇㎞ 오차 범위 내에서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인류가 우주탐사를 시작한 이래 태양계로 향한 우주선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오지 않았다. 머스크가 2018년 팰컨 헤비 로켓에 실어 화성으로 보낸 테슬라 로드스터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끔 예상치 못하게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지구 근처에서 발견한 미스터리 물체는 나중에 1966년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달에 보낸 ‘서베이어2′ 우주선의 일부로 밝혀졌다.
영어 약자로 디스커버(DSCOVR)라고 하는 심우주 기후 관측 위성은 지구에서 약 150만㎞ 떨어진 궤도에서 지구에 영향을 주는 태양풍을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다. 로켓 상단부는 대부분 탑재 위성을 궤도에 밀어 넣고 지구로 낙하해 대기와의 마찰열에 불타 사라진다. 하지만 2015년 팰컨9 로켓은 워낙 먼 곳에 위성을 보내다 보니 다른 로켓보다 훨씬 높고 큰 궤도를 돌게 됐다. 그 결과 이번에 달과 충돌하게 된 것이다.
◇달 표면 아래 연구할 기회 제공
현재 로켓 상단부는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이 오직 지구와 달, 태양의 중력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다만 지구 저궤도를 도는 우주 물체, 즉 우주 쓰레기들은 국제우주정거장이나 위성과 충돌해 피해를 줄 수 있지만, 디스커버를 발사한 로켓은 워낙 멀리 있어 그런 우려 없이 잊혀졌다. 그레이는 “내가 이 물체를 추적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달에 여러 우주선이 충돌했지만 원래 달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물체가 충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레이에 따르면 팰컨 9 로켓 상단부는 지난 5일 현재 달에서 9656㎞ 떨어진 곳을 지나갔다. 그레이는 지난주 로켓 상단부가 지구와 가까운 궤도로 지나갈 것으로 보고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에게 관측을 부탁했다. 영국의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피터 버스휘슬은 지난 20일 마당에서 구경 40㎝ 천체망원경으로 팰컨9 상단부가 빠른 속도로 하늘을 지나가는 모습을 몇 분간 관측했다. 이 관측으로 달과의 충돌 궤도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사의 달 정찰 궤도선(Lunar Reconnaissance Orbiter, LRO)은 달 주위를 돌고 있지만 3월에는 이번 충돌은 관측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게 된다. 나사는 나중에 궤도선으로 충돌구의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궤도선의 카메라를 개발한 애리조나 주립대의 마크 로빈슨 교수는 “4톤 무게의 물체가 시속 9288㎞ 속도로 충돌하면 10~20m 크기의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과학자들이 달 표면 아래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인도의 찬드라얀-2 우주선도 역시 달을 돌고 있어 충돌구를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이스X 달 착륙선 올해 시험 발사
스페이스X의 로켓은 이번에는 달과 충돌하지만 곧 안전하게 착륙하는 모습도 보일 예정이다. 나사는 50년 만에 다시 달에 우주인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추진 중인데, 스페이스X의 스타십을 착륙선으로 선정했다. 스페이스X는 올해 스타십 시험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올해 세계 각국의 달 탐사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중단된 유인 달 탐사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나사는 2025년 우주인의 달 착륙에 대비해 발사체인 ‘스페이스 론치 시스템(SLS)’과 유인 우주선 오리온을 새로 개발했다. 오는 3월 아르테미스 1호의 무인(無人) 시험 발사가 잡혀 있다. 마네킹을 실은 오리온은 달을 두 번 돌고 지구로 귀환한다. 스페이스X와 함께 다른 민간 기업인 애스트로보틱 테크놀로지와 인튜이티브 머신도 나사 의뢰를 받고 과학 장비를 실은 무인 착륙선을 달에 보낸다.
러시아도 1976년 이후 중단된 달 탐사를 재개한다. 7월 소유스 로켓에 무인 탐사선 루나 25호를 실어 발사한다. 루나 25호는 달 남극의 충돌구에서 로봇 팔로 토양 시료를 채취해 분석할 계획이다. 인도와 일본도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달 착륙을 시도하며, 일본 우주 기업 아이스페이스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로버(탐사 로봇)를 실은 착륙선을 달에 보낸다.
우리나라도 오는 8월 스페이스X의 로켓으로 무인 달 탐사선(KPLO)을 발사한다. KPLO는 달 궤도를 1년간 돌며 과학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구 밖 탐사로, 우리나라 우주개발 영역이 정지궤도 위성이 있는 지구 상공 3만6000㎞에서 달까지 38만㎞로 확장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