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 코로나에 이어 이전보다 5배나 빨리 증식하는 변이 에이즈 바이러스까지 나타났다. 다행히 기존 진단법과 치료제가 듣고 있어 에이즈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기적 검사와 함께 제때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크리스토퍼 프레이저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유럽에서 전염력이 더 강하고 병세 악화 속도도 빠른 변이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에이즈 진행 속도 4배 빨라
HIV는 면역세포에 침투해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를 일으킨다. 연구진은 유럽인 109명에서 VB라 명명한 변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확인했다. 스위스와 벨기에인 두 명을 빼고는 모두 네덜란드에서 발견됐다.
다행히 이번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방법으로 진단이 가능하고 치료제도 듣는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하지만 전염력과 독성은 이전보다 훨씬 강했다. 분석 결과 변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기존 바이러스 감염자보다 혈액에 있는 바이러스 양이 5.5배나 많았다.
반대로 면역세포는 급감했다.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는 도움T세포(CD4) 양이 기존 감염자보다 2배나 빨리 줄어들었다. 도움T세포는 다른 면역세포인 B세포의 항체 생산을 돕고 세포독성 T세포가 감염된 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이 세포를 공격하면 인체의 면역체계가 무너진다.
바이러스가 급속히 증식하고 면역세포가 감소하면서 에이즈 진행 속도도 빨라졌다. 기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6~7년이 지나 에이즈가 발병하지만, 이번 변이 바이러스는 감염 진단 후 2~3년 만에 에이즈로 발전했다. 특히 혈액 1㎖당 도움T세포 수가 350개 이하로 떨어지는 진행성 에이즈 바이러스 단계도 기존 바이러스 감염은 3년이 걸렸지만 이번 변이의 경우 9개월로 4배나 빨랐다.
연구진은 변이 바이러스는 전염력도 뛰어나다고 밝혔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가장 빨리 일어나는 바이러스이다. 감염자마다 바이러스가 다르고, 한 사람 안에서도 유전자가 다른 바이러스가 나타난다. 논문 제1저자인 옥스퍼드대의 크리스 와이만트 박사는 “변이 감염자들은 바이러스 유전자가 유사한 것은 그만큼 변이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로 빠르게 전염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보건위기 아니나 감시 강화해야”
연구진은 돌연변이를 역추적해 변이 에이즈 바이러스가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 출현해 2000년대에 급속히 퍼진 것을 알아냈다. 변이 바이러스는 네덜란드 정부가 에이즈 전염 억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2010년 무렵 감소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에이즈간염성병 프로그램 책임자인 멕 도허티 박사는 네이처에 “새 변이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이번 결과는 새로운 병원체에 대응할 감시체계와 전염병 대유행 대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조엘 베르트하임 교수도 사이언스 논평 논문에서 “새 변이에서 나타난 돌연변이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중 보건의 위기는 아니다”라면서도 “전염성이 강한 에이즈 바이러스의 출현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에이즈 환자 수는 바이러스 억제제 덕분에 지난 10년 간 크게 감소했다. 에이즈 환자는 바이러스 변이 여부에 상관없이 치료제를 복용하면 거의 정상 수명을 누릴 수 있다. 치료제 복용자는 혈액이나 체액에서 에이즈 바이러스를 거의 찾기 어려워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위험도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