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는 아무르(시베리아) 호랑이. 한반도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러시아와 중국에 450마리 정도만 남았다.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호랑이를 추적하고 있다./세계자연기금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를 맞았지만 정작 우리 곁에는 호랑이가 없다. 백두산 호랑이라고 부르던 아무르(시베리아)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오래전 자취를 감췄고 이제 러시아 극동과 중국 동북 지방에 450마리 정도만 남았다.

인공지능(AI)이 호랑이와 같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러 나섰다. 과거 사람이 눈밭을 헤매며 호랑이 흔적을 찾았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무인 카메라 영상을 분석해 이동 경로를 실시간 파악한다. 총성과 전기톱 소리로 밀렵꾼의 움직임을 파악해 그에 맞는 순찰 경로까지 짠다. 자연을 살리는 착한 인공지능이다.

◇1년 걸리던 영상 분석, 한 시간에 끝내

세계자연기금(WWF)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민간 기업인 하이크비전, 인텔과 함께 아무르 호랑이를 추적하고 있다. 하이크비전의 무인 카메라에 호랑이가 찍히면 인텔의 인공지능이 어떤 개체인지 파악하는 방식이다. 호랑이는 몸통의 줄무늬로 개체 구별이 가능하다. 인공지능은 호랑이 사진을 반복 학습하면서 특정 개체의 특징을 지문(指紋)처럼 파악한다.

구글 자회사인 영국 딥마인드는 이세돌 9단을 격파한 알파고의 인공지능 기술로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 개체 수를 파악하고 있다. 딥마인드의 인공지능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야생동물 사진 수백만장을 분석해 한 시간 만에 동물 분포 지도를 완성했다. 사람이 하면 몇 년씩 걸릴 작업이었다. 원리는 비슷하다. 무인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인공지능에 반복 학습시켜 동물의 특성을 스스로 파악하도록 했다.

밀렵 감시에는 영상보다 소리 정보가 더 유용하다. 인공지능은 전기톱과 총성,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음 등 사람이 내는 소리를 학습해 밀렵꾼의 특성을 파악한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인 리졸브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위성통신업체인 인마샛과 함께 밀렵꾼의 행동을 감지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했다. 리졸브는 2018년 탄자니아에서 밀렵 20건을 포착해 30명을 체포하고 밀렵 동물 1000㎏을 압수하도록 하는 성과를 거뒀다.

◇의료용 AI로 부상 동물도 찾아

인공지능은 밀렵 감시를 최적화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 정보를 바탕으로 밀렵이 가장 활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과 지역에 감시 인력을 배치하는 식이다. 미국 비영리 단체인 열대우림 연대는 이 방법으로 아프리카에서 자원이 부족한 야간과 주말에 밀렵 감시 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서던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인공지능으로 밀렵을 막는 최적의 순찰 경로를 제시했다.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공격에 방어하는 게임의 원리를 이용했다. 늘 같은 경로로 순찰을 하면 밀렵꾼들이 쉽게 피해가지만 인공지능이 계속 순찰 경로를 바꾸면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우간다와 말레이시아에 시험 적용해 효과를 거뒀다.

밀렵 방지에는 의료 기술도 이용된다. 영국 리버풀 존무어대 연구진은 지난해 말 밀렵 현장에서 부상한 야생동물을 95% 정확도로 감지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발표했다. 원래 사진으로 종기를 진단하던 의료용 인공지능에 동물 44종의 사진 6만6000여 건을 학습시켜 밀렵 감시용으로 발전시켰다.

리버풀 존무어대의 폴 퍼거스 교수는 “인공지능은 환자에게 한 것처럼 야생동물에도 잘 작동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대유행이 잠잠해지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시험을 할 계획이다. 영상 분석은 단 4초에 끝나 밀렵을 실시간 차단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밀거래 추적까지 전방위 활약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전 세계 야생동물 밀거래 시장은 230억달러(약 27조6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밀거래되는 야생동물을 적발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지난해 영국 히스로 국제공항에서 가방 25만개의 X선 영상을 분석해 야생동물에서 나온 물건을 70% 정확도로 찾아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 종이라도 두 달이면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의 컨저베이션X는 소셜미디어와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침팬지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밀거래된 동물인지 찾아내고 있다. 야생동물 생태 연구에서 밀렵 방지와 밀거래 추적까지 전방위에 걸쳐 인공지능이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