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스무 살에 정점을 찍고 그 뒤로 퇴화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예순까지 인지능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직장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업무 능력을 예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독일 하이델베르그대의 안드레아스 보스 교수 연구진은 17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간 행동”에 “10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뇌의 정보 처리 속도는 60대까지 거의 일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운동 속도 느릴 뿐 뇌 기능은 여전
연구진은 과거 하버드대에서 10~80세 118만5882명을 대상으로 암묵적인 인종 편견을 조사한 심리 실험 결과를 새로 분석했다. 당시 실험은 흑인, 백인의 얼굴 사진을 구분하고, 특정 단어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내용인지 판단하는 방식으로 은연중에 나타나는 인종 편견을 알아보는 식이었다.
독일 연구진은 인종 편견과 무관하게 나이에 따라 제시된 단어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긍정 또는 부정적 단어라고 분류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이전 연구와 마찬가지로 정답을 내는 시간은 20세쯤 가장 빨랐다.
그렇다고 20대 이후에 뇌가 느려진다는 것은 아니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으로 실험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다. 예를 들어 어떤 참가자가 주어진 질문의 난이도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반응속도가 느려진다면 운동 반사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분석 결과 나이가 들수록 운동 반사 속도는 계속 느려졌다. 연구진은 순전히 기계적인 반응 속도로 보면 14~16세가 가장 빨랐다고 밝혔다.
반면 인지 정보 처리 속도는 30세에 정점에 올라 이후 60세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60세까지 나이가 들수록 실수도 덜 했다. 20세는 정확도보다 속도를 우선시했다는 말이다.
사람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 특정 기준치에 도달하기까지 지속적으로 정보를 모아 판단을 내린다. 연구진은 이 관점에서 보면 20세 이후 뇌가 느려진 것은 나이가 들면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확실성을 더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나이가 들면 정답 버튼을 누르는 운동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결정을 내리는 데 더 신중해질 뿐이지 뇌가 느려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로 업무 능력 판단 불합리
논문 제1저자인 미샤 폰 크라우스 박사는 “이번 결과는 맥락을 빨리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는 방식의 정신 속도가 노년까지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40~50대가 젊은이보다 지적 속도가 느리다고 보는 생각은 직장에서 고용이나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연구는 그런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단순히 반응 속도에 따라 사람의 지적 능력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각자 다른 임무에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테면 환자 진단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일도 있고, 도로의 장애물을 피하는 것처럼 속도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정 기준 안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상황에 맞게 의사 결정 형태를 달리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미국 보스턴대(Boston College)의 조수아 하츠혼 교수는 가디언지에 “인공지능의 기계학습 방법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라며 “일생동안 지적 능력의 변화는 매우 복잡하지만 20세에 정점을 찍고 이후 내리막길을 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로저 래트클리프 교수도 과학매체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앞서 소규모 연구에서 지적 속도는 60세 전후부터 감소한다는 것을 밝혀냈다”며 “이번 연구는 더 많은 인원과 더 강력한 증거로 이전 연구를 재연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