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식용으로 판매된 야생동물들이 각종 바이러스의 온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야생동물 판매를 철저히 규제하지 않으면 코로나처럼 또 다른 병원성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을 통해 인간에게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난징 농대의 수 슈오 교수 연구진은 “중국 농장과 동물원, 자연에서 채집한 야생동물 18종 1941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포유동물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 102종을 발견했다”고 지난 16일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게재가 결정돼 현재 교정 작업 중이다.
◇고슴도치, 너구리에서 위험 코로나 바이러스 나와
연구진이 분석한 야생동물들은 사향고양이·너구리·오소리·대나무쥐·호저처럼 대부분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미식(美食)으로 즐겨온 종류였다. 이번에 발견한 바이러스 중 21종은 과거 인간에게 감염됐거나 여러 동물 사이에서 종간(種間) 감염을 일으킨 적이 있는 위험군에 속했다. 65종은 아직 보고된 적이 없는 종류였다.
수 교수는 “이번 결과는 야생동물에 있는 바이러스가 다음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먼저 야생동물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계통들이 나왔다. 고슴도치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일으킨 코로나 바이러스와 흡사한 종류에 감염돼 있었다. 또 너구리에서 발견된 개과(科) 코로나 바이러스는 최근 말레이시아와 아이티 사람들에서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전자가 94% 일치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표면에 왕관(코로나) 모양의 돌기가 나 있는 바이러스 종류를 일컫는 말이다.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7종이다. 일반적인 감기를 유발하는 4종과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2년 메르스 유발 바이러스, 이번 코로나 대유행을 유발한 바이러스(SARS-CoV-2) 등 3종이 있다.
야생동물들은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해 받은 중간 숙주였다. 이들은 나중에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앞서 사스를 일으킨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는 박쥐에서 나와 중국 시장에서 팔린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에게 퍼졌다. 연구진은 이번 대유행을 부른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박쥐에서 미지의 중간 숙주동물을 거쳐 사람으로 옮겨왔다고 본다.
◇대유행 후보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검출
과학자들은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새로운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연구진은 이번에 여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발견했다. 특히 사향고양이와 오소리에서 H9N2 A형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바이러스는 최근 닭과 오리에서 많이 발견돼 인간도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2월 보고에서 따르면 지금까지 사람이 H9N2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50건이 채 못 된다. 아직 사람 간 감염을 잘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여러 동물을 거치면서 유전자를 교환해 인간과 동물 모두 감염될 형태로 진화할 수도 있다. 그밖에 B형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노로바이러스, 인간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처럼 인간이 감염될 수 있는 다른 병원성 바이러스들도 발견됐다.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윌리엄 해너지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이번 연구는 야생동물에 아직 밝혀내지 못한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야생동물을 통한 감염)위협이 심각하다는 것을 뒷받침했다”고 밝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대의 마리티제 벤터 교수는 “야생동물을 산채로 판매하는 시장은 바이러스를 인간에 옮길 이상적 장소”라며 “이번 발견은 야생동물 판매와 소비가 금지돼야 한다는 것을 확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신종 병원체의 기원을 찾는 자문 과학자이다.
공동저자인 호주 시드니대 에드워드 홈즈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화난 수산시장에서 사람에게 옮겨왔다는 강력한 의심이 든다”며 “전염병을 점화시키고 불길이 퍼지게 할 다른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중국은 20년 전 사스 이후 이번 연구에서 분석한 야생동물의 판매를 대부분 금지시켰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19년 초 코로나 집단 발병이 가장 먼저 시작된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는 여전히 야생동물들이 판매됐다. 또 동남아시아에서는 지금도 야생동물들이 팔리는 곳들이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홈즈 교수는 “야생동물 판매와 소비가 지속되면 다른 전염병과 대유행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