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꼬리를 자른 다섯줄도마뱀(Eumeces japonicus). 꼬리 근육에 있는 미세 구조 덕분에 상황에 따라 꼬리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Science

도마뱀이 천적을 만나면 재빨리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지만, 평소에는 꼬리가 나뭇가지에 부딪혀도 떨어지는 법이 없다. 한국 과학자가 도마뱀 꼬리가 상황에 따라 순식간에 잘리거나 튼튼하게 유지되는 비결을 밝혀냈다.

미국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의 송용억 교수 연구진은 “도마뱀은 꼬리 단면의 미세 구조 덕분에 상황에 따라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지난 1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밝혔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의 비밀 규명./아부다비 뉴욕대

연구진은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도마뱀과 도마뱀붙이 3종을 잡아 관찰했다. 도마뱀 꼬리는 마디마디가 쉽게 잘려나간다. 잘린 단면을 보면 둘레에 모두 여덟 개의 원뿔 쐐기 구조가 있다. 이 쐐기들이 앞마디의 구멍에 끼어 있다가 천적을 만나면 빠지면서 꼬리가 잘린다.

현미경으로 좀 더 자세히 보면 쐐기 표면에는 버섯 모양 돌기들이 무수히 나있다. 지금까지 이 미세 돌기들이 앞마디의 구멍 안쪽에 있는 미세 홈들과 마치 야구 글러브에 손가락이 들어가듯 밀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쐐기가 끼어 들어가는 구멍 안에는 별다른 홈이 없었다.

송 교수 연구진은 대신 버섯 모양 돌기 표면에 작은 구멍들이 나있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미세 돌기들이 에너지를 방출하는 데 최적화된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버섯 모양 돌기 사이의 공간과 미세 구멍에 있는 빈 공간이 잡아당기는 에너지를 흡수해 꼬리를 튼튼하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반면 꼬리를 비틀면 잡아당길 때보다 17배나 쉽게 마디가 잘렸다.

인도공대(IIT)의 아니망수 가탁 교수는 같은 날 사이언스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도마뱀 꼬리의 생체역학적 구조는 게코 도마뱀붙이나 청개구리의 발바닥에 있는 미세 구조를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게코의 발바닥에는 미세 털이 수백만 개 나 있다. 각각의 털에 작용하는 힘은 미약하지만 수백만 개가 모이면 도마뱀붙이의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강력한 접착력을 발휘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발가락을 세우면 쉽게 떨어진다. 도마뱀이 꼬리를 비틀어 쉽게 잘라내는 것과 같다.

송 교수는 “꼬리가 강약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에서 골딜록스(Goldilocks) 원칙이 적용된 멋진 예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골딜록스는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도 물가 상승은 거의 없는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국 동화에서 골딜록스라는 소녀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수프를 먹은 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