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고래 똥으로 해양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실험이 진행된다. 바다에 비료를 살포해 생태계가 비옥해지면 어족자원이 늘어나고 온실가스까지 바다에 가두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과학매체 뉴사이언티스트는 22일(현지 시각) “국제 공동 연구진이 두 달 안에 인도 서부 해안에서 인조 고래 배설물을 살포하는 실험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왕겨에 영양분 섞어 바다에 살포
이번 실험은 영국 정부의 수석 자문과학자였던 데이비드 킹 케임브리지 기후회복센터장이 미국과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의 6개 대학, 연구기관과 손을 잡고 진행한다. 고래가 배설물로 해양 생태계를 비옥하게 하는 자연의 과정을 모방하자는 것이다.
고래는 바다 밑바닥에서 작은 갑각류인 크릴을 먹고 수면으로 올라와 배설한다. 이때 크릴에 있던 철분이 배설물 형태로 수면에 퍼진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철분을 흡수해 급격히 늘어나 수많은 물고기를 먹여 살린다.
미국 버몬트대와 하버드대 공동 연구진은 2010년 고래가 영양물질을 바다 깊은 곳에서 표층으로 뽑아 올리는 펌프 역할을 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고래 펌프’ 이론이다. 인간이 대형 고래를 남획하면서 고래 펌프도 망가졌다. 1910년부터 1970년까지 남극해에서 대형 수염고래류 150만 마리가 포경선에 희생됐다. 이로 인해 크릴 개체수도 20세기 중반 이후 80% 이상 급감했다.
인조 고래 똥은 철분이 풍부한 모래나 화산재로 만들 예정이다. 킹 소장은 철분과 함께 질산염과 규산염, 인산염 같은 다른 영양분도 적정 비율로 섞는 것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인조 고래 똥은 왕겨과 섞어 바다에 뿌릴 계획이다. 왕겨는 인조 고래 똥이 해수면에 떠 있도록 하는 뗏목 역할을 한다.
◇온실가스 감소 효과도 기대
연구진은 인조 고래 똥이 해양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면서 부수적으로 온실가스도 줄일 수 있다고 기대했다. 고래 펌프가 바다 밑의 영양물질을 해수면으로 끌어올리고 반대로 대기 중의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바다 깊은 곳에 가둔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플랑크톤을 먹고 살다가 죽으면 사체가 바다 밑에 가라앉는다. 그러면 탄소도 같이 바다에 가두는 효과가 발생한다. 킹 소장은 앞서 고래 펌프를 복원하면 매년 수십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바다에 가둘 수 있다고 밝혔다. 인류가 매년 이산화탄소 400억 톤을 배출한다는 점에서 고래 펌프 복원이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진은 해양 쓰레기 투기를 규제하는 런던 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인조 고래 똥 살포는 소규모로 3주 동안만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실험은 왕겨가 인조 고래 배설물을 바다에 전달하는 데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호주 과학자들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고래X(WhaleX)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호주 시드니 앞바다 10㎞ 지점에서 영양물질을 살포했다. 연구진은 일론 머스크가 1억 달러 상금을 걸고 주최한 ‘탄소 제거 엑스프라이즈’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더 큰 규모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조 고래 똥 살포가 기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 아닌지 의심한다. 킹 소장은 전혀 다른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지구공학은 과학기술로 기후를 조절해 온난화를 늦추려는 방법으로, 이를 테면 우주에 태양광 반사경을 설치하거나 인공구름을 만들어 지구로 오는 햇빛을 막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인조 고래 똥 살포는 자연에서 이뤄지는 과정을 복원하는 연구여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