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미국 상업용 위성기업 맥사가 운영하는 위성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50㎞가량 떨어진 벨라루스 레치차에 러시아군이 집결한 모습을 촬영했다. 지난 14일에는 벨라루스 루니네츠 비행장의 러시아 전투기 32대가 맥사 위성에 포착됐다. 이 사진들은 맥사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됐다. 정보 당국이 아닌 민간 기업에 의해 민감한 군사 정보가 속속 공개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징후가 알려진 것이다. 맥사의 위성이 30㎝ 크기 작은 물체들을 구별할 정도로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덕분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상업용 위성과 소셜미디어로 인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의 상황을 전례 없이 상세하게 실시간으로 밝힐 수 있다”며 “투명한 전쟁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민간 우주 시대가 열리며 군사위성에 의존하던 1급 정보들을 대중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됐다. 위성을 대량으로 쏘아 올린 우주기업들이 수집한 사진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 사진들은 군사적 움직임뿐 아니라 도시계획, 재해관리 같은 우리 삶과 밀접한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상업용 위성 영상 산업은 2020년에 26억3000만 달러(약 3조1000억 원)에서 2030년 69억9000만 달러(약 8조3000억 원)로 빠르게 커질 전망이다.
◇도시계획·재해관리에 위성사진 활용
민간기업들이 수집한 위성사진은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농축산업에서 유용하다. 싱가포르의 소프트웨어 기업 이오팩토리는 위성 이미지를 통해 농작물 재배 지역 선정과 농작물 생산량을 추정하는 설루션을 제공한다. 호주 낙농기업 ‘패스처.IO(아이오)’는 위성사진을 분석해 농부들이 광활한 면적의 농장 구석구석의 작황을 한눈에 파악해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건물과 교통량으로 지역경제 동향 분석도 가능하다. 미국 위성사진 분석 기업 오비탈 인사이트는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 대수로 미국 내 약 1000개의 쇼핑몰 방문자 수를 분석한다. 실시간으로 실물경제 동향을 분석할 수 있어, 남들보다 빠른 정보가 필요한 헤지펀드에 데이터를 판매한다. 신축 중인 고층건물들이 올라가는 모습으로도 경제활동 파악이 가능하다.
산불·홍수 등 재해 지역의 피해 면적 조사에도 위성사진이 쓰인다. 최근 화산 폭발로 피해를 본 태평양의 섬 통가에서 쓰나미로 인한 침수 지역을 파악하는 식이다. 캐나다 스타트업 웨일시커는 위성사진으로 약 500마리의 고래를 추적 조사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매킨지는 “위성 이미지는 산업 전반에 걸쳐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민간위성 사진의 활용 가치가 높아지자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이를 사들이기도 한다. NASA는 상업용 데이터를 구매하는 데 한 해 약 3000만 달러(약 358억 원)를 쓴다. 상업용 데이터로 정부 데이터를 보완하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상업용 서비스는 정부가 개발한 시스템보다 더 빨리 군사·정보기관의 요구를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매일 지구로 사진 2000만장 전송
민간 위성기업들은 고품질의 고해상도 사진을 통해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심혈을 쏟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현재 지구를 돌며 사진과 영상을 찍는 관측용 위성은 700개가 넘는다. 위성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지구 구석구석을 훑는다. 2010년 NASA 출신의 과학자들이 설립한 플래닛은 현재 200개 이상의 위성을 운용 중이다. 매일 지구의 모든 지점을 촬영하고 있으며 한 장소에서 1700개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맥사는 하루에 500만㎢ 면적을 찍을 수 있으며, 위성이 최대 15개의 장소를 다시 찾는다고 한다. 6개의 위성을 보유한 블랙스카이도 “하루에 100만 곳을 관측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위성들이 매일 지구로 전송하는 데이터는 80테라바이트(TB)에 이른다. 1200만 화소 사진(4MB) 2000만장, 1분짜리 동영상(100MB)으로 치면 약 1만3000시간 분량이다. 과학전문매체 사이테크데일리는 “앞으로도 위성 데이터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