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로절린드 프랭클린 로버 상상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우주협력이 중단되면 오는 9월 화성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ESA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때아닌 우주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러시아와 진행하던 우주개발 협력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우주당국은 국제우주협력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밝혔지만 당장 러시아는 미국의 경제 제재에 반발하며 국제우주정거장 추락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러시아와 우주협력 중단 목소리 높아져

유럽우주국(ESA)의 요제프 아슈바허 국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날인 지난 25일 트위터에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지만 현재로선 화성 탐사 로버(이동형 탐사로봇) 발사를 포함해 러시아와 협력관계는 계획대로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과 러시아는 오는 9월 카자흐스탄에 있는 러시아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 화성 탐사 프로그램인 엑소마스(ExoMars) 2탄으로 카자초크 착륙선과 로절린드 프랭클린 로버를 보낸다. 앞서 2016년 엑소마스 1탄으로 기체 추적 궤도선(TGO)을 화성 궤도에 진입시켰다. 아슈바허 ESA 국장은 트위터에서 “엑소마스 프로그램은 다음 달부터 카자흐스탄 발사장에서 시작된다”며 “유럽측 기술진이 현지에서 9월 발사에 대비해 우주선 조립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ESA 발표와 달리 과학계에서는 러시아와 협력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미국 스페이스닷컴은 전했다. 러시아스페이스웹닷컴을 운영하는 우주전문 저널리스트인 아나톨리 자크는 트위터에 “당장 엑소마스를 비러시아 로켓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위성턴대의 행성과학자인 폴 번 교수도 트위터에 “ESA 국장은 실수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평화로운 태양계 탐사 세계에는 호전적인 국가가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줄 기회로 사용하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지난해 화성에 도착한 미국의 로버 퍼서비어런스보다는 작고 중국의 ‘주룽(祝融)’보다는 크다. 하지만 강력한 드릴로 2m까지 시추할 수 있어 지하에 얼음 상태로 있는 물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 전 로버는 화성에서 수㎝ 깊이만 시추할 수 있었다.

유럽과 러시아의 우주협력에 차질이 생기면 로버의 화성행은 불투명해질 수 있다. 로버는 원래 2020년에 발사하기로 했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유럽과 러시아 기술진의 이동이 막히면서 올해 발사로 연기됐다. 만약 러시아와 협력이 중단되면 다음 발사가 가능한 시기는 2024년이다. 하지만 그 사이 러시아가 맡았던 착륙선을 유럽이 독자 개발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원웹의 인터넷 서비스용 소형 위성 상상도. 원웹은 이런 위성 4만2000기를 지구 저궤도에 발사할 계획이다.

◇영국 총리 “우주협력 지속 여부 예측 어렵다”

ESA 22개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예산을 내고 있는 영국은 ESA 국장과 달리 우크라이나 사태로 라시아와의 우주 협력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영국 우주국은 “러시아의 불법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앞으로 우주 협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우리는 ESA 회원국과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은 러시아 소유즈 로켓으로 민간업체 원웹(OneWeb)의 우주인터넷용 위성을 발사했다. 원웹은 지난 13번의 발사를 통해 우주에 400여기의 소형 위성을 진입시켰다. 다음달 4일 발사를 포함해 앞으로 최소 5번 더 카자흐스탄의 러시아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 원웹 위성 발사가 준비돼 있다.

원웹은 영국 정부가 3억7000만파운드(약 6000억원)를 투자한 회사이다. 민간 기업이지만 영국 정부의 입장에 따라 로켓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24일 하원에서 “러시아와 과학협력이 예전처럼 지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한화시스템도 원웹에 3억달러를 투자해 이사회에 들어가 있다.

과학계는 엑소마스, 원웹에 이어 내년 초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할 예정이던 유클리드 우주망원경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 망원경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탐사가 목적이다. 유럽우주정책연구소의 장-자크 토르토라 박사는 “유럽 우주 분야에서 정치의 분출을 목격하고 있다”며 “수년간 유럽 우주 개발은 정치와 분리된 채 운영됐지만 이번 위기에는 더 이상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완전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판도를 바꾸는 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2월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는 미국 우주인 4명과 러시아 우주인 두 명, 독일 우주인 한 명 등 우주인 7명이 체류하고 있다./NASA

◇국제우주정거장 두고 미·러 갈등 격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에 우주협력이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연방우주국(ROSCOSMOS·로스코스모스)의 드미트리 로고진 국장은 지난 24일 트위터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뤄지던 협력관계를 파괴할 것인가”라며 “새로운 미국의 제재는 우주정거장이 통제되지 않는 형태로 지구로 돌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주정거장의 전반적인 조종과 항법을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의 무인 화물선인 프로그레스는 정기적으로 우주정거장을 밀어 올려 궤도가 너무 낮아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방사능을 견디는 전자부품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로고진 국장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시스템 덕분에 우주정거장이 우주쓰레기기와 충돌하는 위험 상황을 극복해온 것을 모르고 있다”며 “우주쓰레기는 미국의 뛰어난 기업가로부터 나온다”고 비판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2000여기의 스타링크 우주인터넷용 위성을 발사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에 대해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은 25일 “새로운 수출 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국제우주정거장을 포함해 미국과 러시아의 민간 우주 협력은 지속될 것”이라며 “우주 궤도와 지상에서 우주정거장 운영을 지원도 예정대로 진행되며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실제로 앞서 러시아가 2008년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나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병합했을 때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러시아와의 우주협력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이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20년 4월 국제우주정거장의 모습. 미국의 시그너스 화물선과 러시아의 프로그레스 화물선 두 대, 유인 우주선인 소유즈 1대가 도킹해 있다./NASA

다행히 우주과학자들은 러시아가 말한 우주정거장의 추락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만약 미국의 수출 통제로 러시아 무인 화물선 프로그레스 발사가 차질을 빚어도 미국 스페이스X의 드래건과 노스럽 그루먼의 시그너스 무인 화물선이 충분히 화물 공급을 할 수 있다. 우주인 수송도 문제가 없다. 또 시그너스는 지난 21일 처음으로 우주정거장을 밀어 올리는 로켓 추진 임무도 성공했다.

현재 우주정거장에는 미국 우주인 4명과 러시아 우주인 두 명, 독일 우주인 한 명 등 우주인 7명이 체류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미국과 이스라엘, 캐나다의 민간 우주인 4명이 스페이스X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정거장으로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