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의 화난(華南) 수산시장이 코로나 대유행의 시발점임을 재확인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미국과 중국에서 잇따라 나왔다. 과학자들은 수산시장에서 식용으로 팔렸던 너구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옮긴 중간 숙주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마이클 워러비 교수와 스크립스 연구소의 크리스천 앤더슨 박사 연구진은 지난 26일 “코로나 바이러스 두 계통이 화난 수산시장에서 팔린 야생동물을 통해 2019년 11~12월 두 차레에 걸쳐 사람들에게 퍼졌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두 편의 논문은 사전출판 사이트에 먼저 공개됐다. 아직 동료과학자들의 심사는 받지 않았다. 전날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과학자들도 2000년 1월 화난 수산시장에서 채집한 시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두 계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역시 사전출판 논문 형태로 발표했다.
◇수산시장 야생동물 매장에서 시작
코로나 대유행 초기 중국 우한의 확진자들은 다수가 화난 수산시장을 방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연구진은 코로나 대유행의 기원지를 찾기 위해 2019년 12월 우한에서 나온 코로나 확진자 156명의 지리적 분포를 분석했다.
확진자들은 화난 수산시장 주변에 몰려 있었다.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중국 과학자들이 수집해 올린 2020년 1~2월 확진자 737명의 위치를 분석했더니 이번에는 우한 시장과 떨어진 곳에 집중됐다. 고령자들이 많이 사는 우한의 중심부였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화난 수산시장에서 상인과 손님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해 이후 도시 전체로 번져나갔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는 야생동물들이 화난 수산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었다는 증거도 제시했다. 호주 시드니대의 에드워드 홈즈 교수가 2014년 화난 수산시장을 찍은 사진과 2019년 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사진에 화난 수산시장 남서쪽에서 너구리와 말레이 호저, 붉은 여우 등 야생동물이 판매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중국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7~2019년 화난 수산시장에서 보호종 31종을 포함해 4만7000여마리의 동물이 판매됐다.
중국 방역당국이 2000년 1월 폐쇄된 시장을 조사했을 때는 야생동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야생동물이 판매되던 시장 남서쪽의 바닥과 벽, 하수 등에서 채취한 시료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미국 연구진도 야생동물 매장의 철제 우리와 운반 카트, 새털 제거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인 시료 다섯 점을 확인했다.
앤더슨 박사는 이를 근거로 농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너구리가 2019년 11~12월 화난 수산시장에서 판매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갔다고 추정했다. 지난 2002년 창궐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박쥐에서 유래한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가 중국 시장에서 팔린 사향고양이를 통해 사람에게 퍼지면서 발생했다. 이번 코로나 대유행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너구리가 중간 숙주일 가능성은 지난 16일 중국 난징 농대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제기됐다. 연구진은 중국 농장 등에서 채집한 야생동물 18종 1941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포유동물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 102종을 발견했다. 그 중 너구리에서 발견된 개과(科) 코로나 바이러스는 최근 말레이시아와 아이티 사람들에서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전자가 94% 일치했다.
◇두 차례 걸쳐 코로나 바이러스 퍼져
미국 연구진은 영국과 호주,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연구진과 함께 코로나 대유행 초기 몇 주간 수산시장에서 채집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화 계통을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 의대 박만성 교수 연구진이 참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A와 B 두 계통으로 나뉘었다.
앞서 과학자들은 화난 수산시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B 계통만 발견했다. 하지만 이번 국제 공동 연구진은 A 계통까지 확인했다. 2019년 11~12월 B 계통이 먼저 사람에게 퍼졌고 수주 뒤 A 계통도 사람에게 옮겨갔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시장 인근에 살던 사람에서 A 계통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진도 폐쇄된 시장에서 수집한 장갑에서 A 계통 바이러스를 검출했다.
이번 연구 역시 코로나19의 기원에 관한 확정적인 연구는 아니란 의견도 있다.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의 제시 블룸 박사는 26일 뉴욕타임스에 “A 계통 코로나 바이러스를 검출한 시료는 이미 사람들에게 코로나가 퍼진 뒤에 채취했다”며 “두 번의 감염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록키 마운틴 연구소의 바이러스학자인 빈센트 뮌스터 박사는 2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훌륭한 분석 결과이지만 아직 해석의 여지가 있다”며 “화난 수산시장의 상인과 판매 동물의 혈액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항체를 찾아내야 코로나 기원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시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인 시료를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바이러스가 검출된 동물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으로 가서 조사했다. 지난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화난 시장의 냉동육이나 살아있는 동물에서 직접 채집한 시료 약 200점에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환경 시료 1000여점은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