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서방에 맞서 우주로켓에서 태극기를 지우는 일이 벌어졌다. 각국이 러시아와 우주협력을 중단하면서 우리나라의 위성 발사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연방우주국(ROSCOMOS)은 지난 4일(현지 시각)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대에 서있던 소유즈 로켓을 내려 다시 조립동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소유즈 로켓은 이날 영국 원웹(OneWeb)의 우주인터넷용 위성 36기를 싣고 발사될 예정이었다. 러시아연방우주국은 지난 2일 위성을 군사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영국 정부가 원웹 이사회에서 나가지 않으면 위성 발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영국이 이를 거부하자 로켓 발사를 중단한 것이다.
이날 발사대에서 내려진 소유즈 로켓에는 처음 조립동을 나설 때와 달리 상단부에 한국을 포함해 여럿 나라의 국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원웹 회사 로고 밑에 이사회에 참가한 국가들인 영국과 미국, 프랑스, 일본, 인도, 한국의 국기가 붙어있었다.
러시아는 영국에 최후통첩을 하기 전에 이미 로켓에서 원웹 이사국 국기를 흰 테이프로 가리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상단부와 로켓 본체를 연결하는 부분에 러시아 국기를 새로 달았다.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연방우주국장은 다른 나라 국기를 가리는 작업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고 “바이코누르에서 다른 나라 국가의 국기 없이 발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로켓은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2020년 원웹이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4억파운드(한화 6450억원)를 투자하고 이사회에 들어갔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유럽 통신사인 유텔셋, 한국 한화시스템 등도 원웹 지분을 갖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원웹에 3억달러를 투자해 이사회에 들어가 있다.
원웹은 러시아의 요청을 즉각 거부했다. 영국 기업에너지부 크와시 쿼텡 장관도 “러시아연방우주국과 원웹에 대해 협상은 없다”며 “영국 정부는 원웹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웹은 지구 저궤도에 올린 소형 위성 648기로 지구 전역에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미 위성 428기를 우주에 올렸다. 지금까지 발사한 위성으로는 북위 50도 이상 지역에만 인터넷 서비스를 할 수 있지만, 목표한 수를 채우면 지구 전역 서비스가 가능하다.
원웹은 당초 4일 발사를 포함해 앞으로 최소 5번 더 카자흐스탄의 러시아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 위성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가 러시아와 진행하기로 한 모든 우주협력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원웹은 발사대행업체인 아리안스페이스와 대체 로켓을 찾고 있다.
사정은 여의치 않다. 유럽의 아리안 5호나 6호 로켓은 이미 발사 일정이 꽉 찼거나 발사가 힘든 상태다. 만약 아리안 로켓으로 바꾼다 해도 다시 위성을 로켓에 탑재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조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올 하반기 러시아 우주로켓으로 중대형 인공위성 2기를 쏘아 올릴 계획이지만, 최근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끊길 가능성도 있다.
과기정통부는 앞서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6호를 러시아 앙가라 로켓으로, 차세대중형위성 2호는 러시아 소유즈 로켓에 실어 발사하기로 러시아 측과 계약했다. 정부는 러시아 로켓 사용이 힘들어질 상황에 대비해 다른 로켓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나 유럽의 아리안 로켓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올 하반기 발사일정에 맞출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