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없이 난자가 수정란으로 자라는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생쥐가 나중에 새끼를 낳은 모습./PNAS

정자 없이 난자만으로 자손을 낳는 단성생식이 포유류인 생쥐에서 처음으로 실현됐다. 난자에서 태어난 생쥐는 나중에 자라 새끼까지 낳았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태아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인간에게 같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현재로선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중국 상하이 자우퉁대 의대의 웨이 얀창 교수 연구진은 “생쥐의 난자에 있는 특정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해 단성생식으로 정상 자손을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8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밝혔다.

◇난자에서 태어난 생쥐, 자라서 번식도 성공

암수 구별이 있는 동물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서 태아로 자란다. 단성생식은 이와 달리 미수정 난자가 혼자서 태아로 자라는 것이다. 처녀생식이라고도 한다. 파충류나 양서류, 새나 식물에서 이 같은 단성생식이 이뤄지지만 포유류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미수정 난자 227개의 유전자를 교정해 수정란 192개를 만들었다. 이중 14개가 자궁에 정상적으로 착상해 임신에 성공했으며, 그 중 3개가 나중에 새끼로 태어났다. 최종적으로 한 마리만 암컷 성체로 자랐다. 이 생쥐는 새끼도 낳았다.

앞서 2004년 생쥐의 미수정 난자 두 개를 융합해 새끼를 탄생시킨 적이 있지만, 발생 단계가 다른 두 난자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단성생식은 아니었다. 2012년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생쥐의 줄기세포를 난자로 분화시킨 다음, 정자와 수정시켜 새끼를 탄생시킨 바 있다. 2019년에는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이 정자, 난자 없이 생쥐를 번식시켰다. 이때는 줄기세포를 바로 수정란으로 자라게 했다.

사람을 포함해 포유류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고 태아로 자라 아기가 태어난다(위). 반면 양서류나 파충류, 어류, 새에서는 난자 혼자 수정란으로 자라 자손을 낳는 단성생식이 일어난다(아래). 이때 후후손은 모두 암컷이 된다./New Zealand Geographic

◇암컷 유전자 한쪽을 수컷으로 가장

태아는 부모에게서 각각 DNA를 반반씩 물려받는다. 이때 부모 양쪽에서 받은 똑같은 유전자 두 개가 충돌하지 않도록 한쪽 유전자에 메틸기를 붙여 작동하지 않게 한다. 이를 유전자 각인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이를 모방했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DNA 영역을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이다.

웨이 교수 연구진은 먼저 발생 초기 단계에서 미수정 난자의 유전자를 두 배로 증가시켰다. 유전자 양에서는 일반 수정란과 똑같아진 것이다.

다음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배아 발생에 중요한 각인 유전자 7개를 교정했다. 인위적으로 유전자 각인을 유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 추가된 암컷 유전자는 수컷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암컷 유전자 한쪽을 수컷으로 가장시킨 셈이다. 그 결과 수정란은 태아로 자랄 수 있었다.

영국 배스대의 토니 페리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에 “초기 배아 발생과 부모의 유전자가 조절되는 과정에 중요한 조각을 밝혀낸 것”이라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능력을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단성생식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새끼는 체중이 적었으며 일부 유전적 결함도 보였다. 태아 발생과정에 필요한 각인 유전자가 더 있거나 유전자 교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단성생식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사람 태아 발생에 관여하는 각인 유전자에 대한 정보가 생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생쥐의 각인 유전자 역시 계속 새로 발견되고 있다. 배스대의 페리 교수는 지난해 초기 생쥐 배아에서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각인 유전자 71개를 새로 발견하기도 했다. 사람 수정란을 대상으로 이번 같은 단성생식 실험을 할 수도 없다. 다만 여성의 난자만으로 아기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만은 확인한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