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미인은 오늘날과 달랐다. 1908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의 다뉴브 강가에서 3만 년 전에 만든 여인상이 발굴됐다. 풍만한 가슴과 굵은 허리, 불룩 튀어나온 배와 엉덩이에 성기가 강조된 모습이었다. 학자들은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추정하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불렀다.
과학자들이 구석기시대 비너스가 이탈리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게르하르트 베버 교수 연구진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만든 돌이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 가르다호 계곡에 있는 석회암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지난달 2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밝혔다.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높이가 11㎝이다. 재료는 어란상암(魚卵狀岩) 또는 어란상 석회암으로 부르는 돌이다. 말 그대로 지름 0.25~2㎜의 물고기 알 모양 입자들이 모여 있는 돌이다. 그런데 비너스가 발굴된 곳에서 최소 200㎞ 이내에는 어란상 석회암이 나오지 않는다.
베버 교수는 빈 자연사박물관의 지질학자들과 함께 비너스상을 CT로 찍어 내부 구조를 확인했다. 이후 서쪽 프랑스에서 동쪽 우크라이나까지, 또 북으로는 독일에서 남쪽 이탈리아 시칠리아까지 같은 구조를 가진 어란상 석회암을 찾았다. 그 결과 이탈리아 북쪽 가르다 호수 계곡에서 나온 석회암이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흡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버 교수는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알프스 산맥 남쪽에서 온 돌로 조각했다는 의미”라며 “당시 석기를 쓴 사람들이 살기 적합한 곳을 찾아 강을 따라 수 세대에 걸쳐 북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CT 영상으로 비너스의 내부에서 길이가 2.5㎜인 작은 조개 화석들도 발견했다. 조개는 2억5100만년에서 6600만년 사이 쥐라기에 살다가 멸종한 종류였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나오는 석회암에도 같은 조개 화석들이 있었다. 이는 비너스가 빈 일대에서 나온 돌로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빈 분지의 암석은 2300만~600만년 전 마이오세에 형성됐다.
비너스에는 커다란 갈철광 입자 흔적도 있었다. 그동안 비너스의 배꼽과 허리 등에 있는 반구형 구멍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는데 , 이번에 갈철광 입자가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석회암에는 수많은 미세 구멍도 있었다. 물고기 모양 입자의 핵이 녹아내리면서 생긴 것이다. 연구진은 구멍이 많은 돌은 3만년 전 석기로 조각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