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대학병원에서 지난 1월 57세 남성 심장병 환자인 데이비드 베넷(오른쪽)이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받기 전 담당 의사 바틀리 그리피스(왼쪽)와 찍은 사진. /미 메릴랜드대학병원

세계 최초로 돼지 심장을 이식받았던 환자가 수술 두 달 만에 사망했다. 생존 기간이 짧았지만 환자가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식받고 초기 급성 거부반응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메릴랜드대학병원은 “데이비드 베넷(57)이 역사적인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지 두 달 만에 지난 화요일 사망했다”고 9일(현지 시각) 밝혔다.

병원 대변인은 “베넷의 몸이 심장을 거부했는지 불분명하다”며 “사망 당시 명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대학병원측이 아직 의사가 정밀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며 “병원 연구진은 의학 학술지에 검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고인의 아들인 데이비드 베넷 주니어는 “병원 의료진이 아버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며 “아버지는 실험적인 이식 수술을 받아 의학에 기여했으며 장차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희망을 줬다”고 밝혔다.

돼지 심장 이식 과정

◇유전자 10개 바꾼 돼지 심장 이식

당시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이날 “의료진은 베넷씨의 죽음에 망연자실했다”고 밝혔다. 그는 “베넷씨는 죽는 순간까지 병과 싸운 용감하고 훌륭한 환자였다”며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살고자 하는 용기와 확고부동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추모했다.

말기 심장병 환자인 베넷은 지난 1월 7일 미국 바이오 기업 리비비코어가 제공한 돼지 심장을 이식받았다. 당시 베넷은 치명적 부정맥 때문에 입원해 6개월 이상 심장과 폐를 우회해 산소를 공급하는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크모)로 연명했지만 여러 병원에서 ‘심장 이식 불가’ 판정을 받았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허가했다.

베넷씨가 받았던 이종(異種) 장기 이식 수술은 만성적인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장기 이식 대기자는 현재 약 11만명이며 매년 6000명 이상이 이식 수술을 못 받고 숨진다. 과학자들은 동물 장기 이식, 특히 미니 돼지를 최적의 대안으로 꼽는다. 미니 돼지는 다 자라도 일반 돼지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몸무게는 60㎏으로 사람과 비슷하고 심장 크기도 사람 심장의 94% 정도다. 해부학적 구조도 흡사하다. 새끼도 많이 낳아 장기 대량 공급에 유리하다.

베넷에게 이식한 돼지 심장은 미국 바이오 기업 리비비코어가 제공했다. 이 회사는 돼지에게 유전자 교정과 복제라는 두 가지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했다. 먼저 유전자 가위(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로 면역 거부반응을 유도하는 유전자 3개가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또 인체의 면역 체계에 순응하도록 돕는 인간 유전자 6개는 추가하고 이식한 심장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성장 유전자 하나는 기능을 차단했다. 이렇게 유전자를 교정한 세포를 복제해 이식용 장기를 공급할 돼지 수를 늘렸다.

미국 앨라배마대 의료진이 지난해 9월 돼지 신장을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남성 짐 파슨스(57)에게 이식하는 모습. 의료진은 1월 20일 미국이식학회저널(AJT)에 수술 결과를 발표했다./미 앨라배마대

◇돼지 신장 이식도 잇따라 시도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주 동안 아무런 거부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베넷씨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재활치료를 받고 수퍼볼 경기도 시청했다고 병원은 밝혔다. 하지만 사망 며칠 전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베넷씨가 사망했지만 그럼에도 이식 직후 심장이 초기 급성 면역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한 달 이상 정상적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술 집도의인 그리피스 박사는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걸음 가까이 간 획기적 수술”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종 장기 이식에서 잇따라 성과가 나왔다. 지난해 10월 뉴욕대병원 의료진이 뇌사자에게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신장을 연결해 54시간 정상 기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신장은 몸밖에 연결했다.

지난 1월 20일에는 앨라배마대 의료진이 지난해 9월 뇌사 환자의 몸 안에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수술 23분 만에 돼지 신장이 소변을 생성하기 시작했으며, 사흘간 정상적인 기능을 보였다. 앨라배마대는 연말까지 실제 환자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베넷씨의 수술 직후 그가 34년 전 한 사람을 칼로 찔러 반신불수로 만든 범죄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희생자는 평생 휠체어에 살다가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베넷은 6년을 복역하고 1994년 석방됐지만 희생자가 사망할 때까지 보상금을 다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메릴랜드대학병원은 “환자는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왔고, 병원은 의료 기록만을 근거로 이식 자격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