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뇌 질환이다. 환자의 체취로 파킨슨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전자코가 개발됐다./Creative Commons

전자코가 파킨슨병 환자 특유의 미세한 체취(體臭)를 파악해 눈에 띄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조기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파킨슨병을 발병 초기에 찾아내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를 늦추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저장대의 첸 싱, 류 준 교수 연구진이 파킨슨병 환자에서 나오는 휘발성 물질을 감지해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조기진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 후각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지난 12일(현지 시각) 밝혔다.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ACS 오메가’에 실렸다.

◇전자코로 파킨슨병 환자 대부분 찾아내

파킨슨병은 근육의 무의식적인 운동을 담당하는 뇌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손발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등 운동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수면 장애와 후각 변화도 동반된다. 조기 진단만 하면 적절한 치료로 증상을 줄이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초기 증상이 달라 다른 뇌질환과 구분하기 어렵다.

전자코의 파킨슨병 조기 진단 과정. 환자 등에서 체취한 피지 성분을 인공지능 후각 시스템(AIO)가 분석한다. AIO는 음파로 체취 성분의 특성을 파악해 환자에 많은 특정 화합물을 가려낸다./ACS Omega

저장대 연구진은 이번에 토스터기보다 크지 않은 크기의 전자코 장치를 개발했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먼저 파킨슨병 환자 31명과 건강한 사람 32명의 등에 있는 피지를 거즈로 흡수했다. 이후 피지를 기화시키고 여기에 음파를 쏘았다. 음파는 기체 성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인공지능은 이 형태를 학습해 파킨슨병 환자 특유의 체취를 알아냈다.

이후 파킨슨병 환자 12명과 건강한 사람 12명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전자코의 성능을 시험했다. 전자코는 파킨슨병 환자에 특히 많은 유기화합물 세 가지를 분석했다. 전자코의 정확도는 70.8%였다. 파킨슨병 환자를 가려내는 민감도는 91.7%였으며,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특이도는 50%였다. 즉 실제 환자는 거의 놓치지 않지만 종종 건강한 사람을 환자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으로 환자의 체취를 모두 분석하면 정확도가 79.2%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영국 간호사의 후각 진단 능력을 모방

연구진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전직 간호사인 조이 밀른이 파킨슨병 환자 특유의 체취를 감지할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2019년부터 전자코 개발에 착수했다. 밀른은 파킨슨병에 걸린 남편이 몸에서 전과 다른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했다. 이후 남편과 같이 참석한 파킨슨병 환자 모임에서 다른 환자들도 비슷한 체취가 나는 것을 알고부터 후각으로 파킨슨병을 조기 진단하기 시작했다. 밀른은 건강한 사람에서도 같은 체취를 감지한 적이 있는데, 몇 달 뒤 실제로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났다.

영국의 전직 간호사인 조이 밀른이 파킨슨병 환자의 옷에서 체취를 맡는 모습. 몇개월 뒤 증상이 나타난 사람도 후각으로 찾아냈다./Chris Watt

과학자들은 밀른이 감지한 파킨슨병 환자 특유의 체취를 분석했다. 그 결과 피부에서 지방을 분비하는 피지에 특정 유기 화합물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화합물들이 피부에 사는 미생물인 효모에 작용하면서 환자 특유의 체취를 만들었다. 이런 몸냄새 성분은 기체 크로마트그래피 질량분석 장치로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작동과정이 복잡하고 가격도 비싸 일반 병원에서 쓰기 힘들다. 이에 비해 저장대가 개발한 전자코는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물론 이번 전자코도 아직 밀른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밀른은 파킨슨병 환자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후각으로 찾아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이 파킨슨병 환자의 체취 정보를 더 많이 학습하고 인종간 체취 차이도 감안하면 정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아직 연구가 초기 단계이지만 성능이 향상되면 전자코의 휴대가능성과 저렴한 분석 비용을 감안하면 파킨슨병 환자 조기 진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