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과학자들이 바나나에 손상을 주지 않고 껍질만 깔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전에는 힘 조절이 어려워 바나나처럼 부드러운 과일은 으깨버리기 일쑤였지만 이번 로봇은 인공지능 덕분에 사람처럼 유연한 동작을 할 수 있었다.
일본 도쿄대 대학원 지능기계정보과의 야수오 쿠니요시 교수 연구진은 최근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인공지능 기계학습을 거친 로봇이 한 손으로 바나나를 잡고 다른 손으로 껍질을 벗기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13시간분 동작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로봇은 산업현장에서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해내지만 바나나처럼 무른 과일은 다루기 어렵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재질이 부드러워 잘못 쥐면 부서지기 쉽다.
쿠니요시 교수와 요시유키 오무라, 김희철 연구원은 사람이 하는 동작을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바나나를 다루는 일을 일일이 프로그램하지 않고 로봇이 스스로 배워 터득하도록 한 것이다. 박사과정 2년차인 김 연구원은 이번 논문의 대표저자이다.
연구진은 먼저 손가락 두 개를 가진 로봇을 수동으로 조작해 바나나 껍질을 까도록 했다. 바나나 껍질을 까는 과정은 한 손으로 바나나를 쥐고 수직으로 세우면 다른 손이 오른쪽과 왼쪽 껍질을 순차적으로 까는 식으로 9단계로 세분화해 각각 수천 번씩 반복시켰다. 한쪽 손으로 바나나를 잡는 과정은 2050회 반복했으며, 다른 손으로 바나나 끝을 잡는 모습은 2141번 보여줬다.
연구진은 총 811분에 걸친 로봇의 동작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그 결과 로봇은 나중에 복잡한 계산 과정 없이도 스스로 바나나를 손상시키고 않고 껍질을 깔 수 있었다. 성공률은 57%였으며, 전체 과정은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로봇의 정교한 동작 구현에 도움
연구진은 “이전 같으면 수백, 수천 시간이 필요한 훈련 과정을 13시간으로 단축했다”며 “그만큼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컴퓨터 계산 용량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영국 셰필드대댜의 조너선 에이트킨 교수는 과학매체 뉴사이언티스트에 “이번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사용한 방법이 심층 모방 학습을 통해 로봇의 훈련에 이전됐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단순한 흥밋거리에 그치지 않고 장차 정교한 동작이 필요한 다른 로봇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를 테면 부드러운 인체 조직을 다루는 수술 로봇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접하는 위험물 제거 로봇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로봇에 같은 인공지능 학습과정을 적용하면 돌발상황에서 스스로 안전하고 정교한 동작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