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과학 논문의 양(量)뿐만 아니라 질(質)에서도 미국을 추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피인용 지수 최상위 1% 논문 수에서 중국은 생명과학과 의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피인용 지수는 다른 논문에 얼마나 인용됐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로, 연구가 얼마나 우수한지 판단하는 데 이용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이런 내용을 담은 ‘글로벌 미·중 과학기술경쟁 지형도’ 보고서를 4일 공개했다. KISTI는 과학 분야를 10개로 나눠 분야별로 2000~2019년 논문 수와 피인용 지수 최상위 1% 논문 수를 비교했다. 10대 분야는 컴퓨터·정보과학, 물리·천문학, 화학, 생명과학, 전기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재료공학, 나노 기술, 임상의학이다.
◇최상위 1% 논문, 5개 분야서 美의 2배
과학 분야 논문 수에서 중국은 이미 5년 전 미국을 추월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논문 양으로 미국을 2017년, 유럽연합(EU)을 2019년 각각 추월했다. 2020년 기준 중국은 한 해 66여 만건의 논문을 발표해 전 세계 학술 문헌의 21.2%를 차지했다. EU와 미국의 점유율은 각각 19.7%와 15.6%다.
중국은 과학 논문의 질에서도 비슷한 시기 미국을 뛰어넘었다. KISTI에 따르면 2000~2002년만 해도 미국은 10개 분야 모두 논문 수나 질에서 압도적인 1위였다. 중국은 5위권 안팎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0~2012년 중국은 양과 질 모두에서 전체 2~3위로 순위가 오르며 미국의 턱밑까지 쫓았다. 그리고 2017~2019년 10개 과학 분야 가운데 8개 분야에서 미국의 피인용 지수 최상위 1% 논문 수를 넘어서면서 세계 1위에 올랐다. 중국의 2017~2019년 피인용 지수 최상위 1% 논문 점유율은 최소 43.41%(물리·천문학)에서 최대 71.37%(나노 기술)에 이른다.
특히 피인용 지수 최상위 1% 논문 수에서 중국은 10개 분야 가운데 5개 분야에서 미국의 2배를 넘었다. 단순히 순위만 뒤바뀐 것이 아니라 격차를 크게 벌린 것이다. 해당 분야는 화학, 전기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나노 기술로 모두 인공지능(AI), 양자, 반도체 등 첨단 기술과 관련된 분야다. KISTI 박진서 글로벌R&D분석센터장은 “중국이 10여 년 전부터 양적으로 미국을 위협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제는 연구 성과 측면에서도 미국이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아직 미국을 따라잡지 못한 것은 생명과학과 임상의학 분야뿐이었다. 중국의 피인용 지수 최상위 1% 논문의 점유율은 생명과학에서 22.86%로 2위, 임상의학은 11.69%로 9위였다. 두 분야 모두 미국이 1위다.
◇연간 R&D에 700조원 쏟아부어
중국의 약진은 국가 차원에서 R&D에 대규모 투자해 과학을 육성해온 덕분이다. 미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싱크탱크인 벨퍼센터에 따르면, 2000년 중국의 연간 R&D 투자는 300억달러(약 36조5000억원)로 미국(2700억달러)의 9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5800억달러(약 704조8000억원)로 미국(6400억달러)을 거의 따라잡았다.
중국은 기초과학은 물론 제조 공정 개발 등 응용 분야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커창 총리가 AI, 양자, 뇌과학, 유전자 바이오, 임상의학, 집적회로, 심해·우주·극지 탐험 7개 핵심 기술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도 양자 기술 발전의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미 국립과학재단(NSF)은 “미국은 전체 R&D의 17%를 기초과학에 투자하지만 중국은 새로운 제품이나 공정 개발에 중점을 둔다”고 분석했다.
인해전술도 한몫했다. 미 조지타운대 보안·신흥기술센터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대학의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박사 졸업생은 2000년 각각 1만8289명과 9038명이었다. 하지만 2019년 중국 박사 졸업생 수가 4만9498명으로 미국 졸업생 수 3만3759명을 넘어섰고, 2025년에는 7만7179명으로 미국(3만9959명)의 2배 가까이 될 전망이다. 2019년 기준 중국의 총 연구원 수는 210만9459명에 달한다.
미 하버드대 벨퍼센터는 “양자, AI, 5G, 반도체 등에서 중국이 미국의 심각한 경쟁자가 됐다”며 “아직 뒤처진 분야도 앞으로 10년 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