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0년 전 이집트 건축가와 아내의 무덤에서 나온 파피루스. 부부가 사자(死者)와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에게 경배를 드리는 모습이다. /이집트 박물관

고대 이집트의 향기가 현대 과학의 힘으로 복원됐다. 고대의 향기는 이집트인의 과거 생활상을 알려줄 뿐 아니라 박물관 관람객에게 고대로 돌아간 느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탈리아 피사대의 프란체스카 모두뇨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고고과학 저널’ 최신호에 “3400년 전 고대 이집트인의 무덤 부장품 향기를 분석해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고대 이집트의 건축가였던 ‘카’와 아내인 ‘메리트’의 무덤을 연구했다. 이 무덤은 1906년 고대 이집트 유적이 몰려 있는 룩소르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됐다. 왕족이 아닌 무덤으로는 가장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당시 부유층의 매장 풍습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3400년 전 이집트 무덤의 부장품에 담긴 휘발성 물질을 채집하는 모습. 미라 처리에 쓰인 밀랍과 사후 식량으로 넣은 과일, 생선 향기 등이 확인됐다. /이탈리아 피사대

건축가 부부의 무덤에서는 항아리와 단지, 주전자들이 밀봉된 채 같이 발굴됐다. 연구진은 밀봉된 항아리와 부패한 음식물이 노출된 채 담겨 있는 그릇을 며칠간 비닐봉지에 넣어 휘발성 분자가 공기에 농축되도록 했다.

연구진은 질량 분광계로 비닐봉지 속의 공기를 분석해 밀랍에서 나오는 알데하이드와 긴 사슬 구조의 탄화수소, 마른 생선에서 나오는 트리메틸아민, 과일의 알데하이드 등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놀랍게도 시료 3분의 2에서 분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과일과 생선은 사후 세계를 위한 식량이고 밀랍은 미라의 방부 처리에 쓴 것으로 추정됐다.

고대 이집트의 향기를 복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영국 요크대의 스티븐 버클리 교수는 이집트 무덤에서 5000~6300년 전 시신을 감싼 붕대를 풀어 휘발성 분자를 추출했다. 분석 결과 휘발성 분자는 세균 번식을 막는 방부제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때까지 알려진 것보다 1500년은 더 빨리 미라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3400년 전 이집트 무덤의 부장품에서 나온 휘발성 물질의 특성 분포. 기름이나 지방(붉은색), 밀랍(녹색) 성분 등이 확인됐다. /이탈리아 피사대

버클리 교수는 네이처에 “향기는 아직도 고고학에서 미개척 분야”라며 “고대인을 이해하려면 향기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식물성 수지(樹脂)로 만든 향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원의 의식이나 장례식에 자주 쓰였지만 수지를 분비하는 식물이 이집트에서 자라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향을 얻기 위해서는 장거리 원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향기로 고대의 풍습과 함께 무역까지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고대의 향을 복원하면 실감형 영화처럼 박물관 관람객에게 몰입형 체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무덤 부장품인 항아리를 보면서 그 속에 담겼던 과일의 향기를 같이 맡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