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등에 달라붙은 바로아 응애는 피를 빨아먹고 병원성 바이러스를 옮긴다. 미국 과학자들이 바로아 응애에 대한 꿀벌의 겨울 생존율을 20배 이상 높인 신품종을 개발했다./ARS

올해 봄에는 꽃들이 만개해도 꿀벌이 잘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기생충인 응애 때문에 많은 꿀벌이 겨울을 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꿀벌의 최대 천적인 응애를 이겨낼 수 있는 신품종을 개발해 야외 실험에서 겨울 생존율을 20배 이상 높이는 데 성공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의 크리스틴 힐리 교수와 농무부 농업연구소(ARS)의 마이클 시몬-핀스트롬 박사 연구진은 “바로아 응애(Varroa mite)에 저항력을 가진 꿀벌을 개발해 겨울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고 지난 7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위생 관리 철저한 꿀벌만 선별 육종

기생충 진드기의 일종인 바로아 응애는 꿀벌의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고 각종 병원성 바이러스를 옮긴다. 기생충에 감염돼 약해진 꿀벌 집단은 다른 질병에도 쉽사리 감염된다.

미국 농업연구소는 지난 2014년 바로아 응애에 강한 ‘폴-라인’ 품종 꿀벌을 개발했다. 이를 지난겨울 미시시피와 캘리포니아, 노스 다코타, 사우스 다코타 주의 실제 양봉 농가에서 일반 꿀벌과 생존율을 처음으로 비교한 것이다.

야외 실험 결과 가을에 진드기 살충제를 쓰지 않은 경우 폴-라인 꿀벌의 겨울 생존율은 62.5%였다. 일반 꿀벌은 3%에 불과했다. 살충제를 쓰면 폴-라인 꿀벌의 겨울 생존율은 72%이고, 일반 꿀벌은 56%였다. 결국 살충제에 상관없이 신품종의 겨울 생존율이 더 뛰어난 것이다.

미국 농업연구소의 시몬-핀스토롬 박사는 “바로아 응애 방제 없이도 꿀벌 군집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면 양봉업자들의 돈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진드기 살충제는 경제적 비용도 문제지만 꿀벌에게도 해로운 경우가 있고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꿀벌까지 유발할 수 있다.

연구진은 1990년대 말부터 바로아 응애 피해가 적은 꿀벌 군집을 이용해 신품종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꿀벌 중에 바로아 응애에 감염된 번데기를 벌통 밖으로 내버리는 행동을 하는 개체를 골라냈다. 농업연구소의 프랭크 린켄비치 박사는 “이른바 ‘바로아 민감 위생(VSH)’ 특성을 가진 꿀벌을 선별해 신품종으로 육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로아 응애에 감염된 번데기를 골라 벌통 밖으로 버리는 꿀벌. 과학자들은 이러한 '바로아 민감 위생(Varroa-sensitive hygiene, VSH)’ 특성을 가진 꿀벌을 선별해 신품종으로 육종했다./VP Queen Bees

◇응애가 옮기는 바이러스 수치도 감소

논문의 제1저자인 영국 엑시터대의 토머스 오시아-휄러 교수는 “(병원체에 대한) 이런 종류의 저항력은 화학물질이나 인간의 개입 없이도 바로아 응애 위협에 대해 자연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오시아-휄러 교수는 루이지아내 주립대 힐리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신품종 야외 실험 연구를 진행했다.

폴-라인 신품종은 바로아 응애뿐 아니라 이 기생충이 옮기는 다른 바이러스에도 저항력을 보였다. 신품종은 날개 기형 바이러스 A와 B, 만성 꿀벌 마비 바이러스 등 꿀벌 군집을 위협하는 세 가지 주요 병원성 바이러스 수치도 일반 꿀벌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바로아 응애는 국내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지난 7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겨울 꿀벌 약 78억마리가 폐사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사육 꿀벌의 14%에 이르는 수치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꿀벌 기생충인 응애의 피해가 유독 심했다”고 했다.

응애 피해가 심해지자 양봉업자들이 살충제를 뿌리는 등 방제를 강하게 하면서 꿀벌이 줄어든 영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정한 기후 탓에 지난해 꽃이 일찍 피었다가 빨리 진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