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강의 동물로 불리는 물곰. 극한 환경도 견뎌 최근 우주 실험에 단골로 이용된다./Eye of Science

영하 273도 극저온이나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는 동물이 있다. 바로 다리 여덟 개를 가진 작은 동물인 물곰이다. 아무리 지구 최강이라지만 그 짧은 다리로 어떻게 전 세계에 퍼졌을까. 과학자들이 마침내 수수께끼의 답을 찾았다. 물곰에게는 느리지만 확실한, 달팽이라는 자가용이 있었던 것이다.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대의 조피아 크신츠케비치 교수는 1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물곰이 달팽이에 올라타고 이동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달팽이 점액 독성 견디며 이동

물곰은 절지동물의 이웃으로 몸길이가 1.5㎜를 넘지 않는다. 이끼에서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산다. ‘느리게 걷는 동물’이란 뜻의 타디그레이드(tardigrade)라는 이름이 있지만, 물속을 헤엄치는 곰처럼 생겼다고 물곰(water bear)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물곰은 전 세계에 1400여종이 있다. 멀리 이동하지 않고서는 이 정도 다양성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물곰은 워낙 몸집이 작아 이동거리는 짧을 수밖에 없다.

폴란드 연구진은 물곰이 사는 이끼에 달팽이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느리지만 물곰에 비하면 크고 빠른 동물이라서 무임승차하기도 안성맞춤이라고 볼 수 있다. 55년 전 달팽이가 먹은 물곰이 나중에 배설물과 함께 밖으로 나와 멀리 이동했다는 연구도 있었다.

폴란드 과학자들이 물곰(왼쪽, 작은 사진은 가사상태)이 달팽이(가운데)에 올라타고 멀리 이동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오른쪽 사진은 이끼에 수분을 공급하자 다시 살아난 물곰(화살표)./Scientific Reports

연구진은 물곰이 있는 물방울이나 이끼로 달팽이가 기어가도록 했다. 물곰은 달팽이가 분비하는 점액에 달라붙었다. 달팽이는 물방울에 있는 물곰 38마리를 옮겼으며, 이끼에 있는 물곰은 12마리가 달팽이를 타고 이동했다.

문제는 달팽이 점액이 물곰에게 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물곰은 물이 없으면 몸을 공처럼 말고 일종의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다. 하루 뒤 다시 수분이 공급되면 98%가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달팽이 점액으로 덮인 물곰은 34%만 살아남았다.

연구진은 점액이 해롭지만 물곰의 번식 능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물곰은 무성생식(無性生殖)이 가능해 한 마리만 이동에 성공해도 그곳에서 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달팽이보다 더 멀리 물곰을 옮긴 사례도 있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빙하 위에 부는 돌풍이 물곰을 1000㎞까지 날려버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람은 물곰을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지만, 달팽이는 늘 출발지점과 유사한 곳으로 가서 물곰에게 더 유리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물곰의 알도 달팽이에 올라타고 이동할 수 있는지, 달팽이를 이용한 여행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알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사 “외계 생명체로 최적 동물” 꼽아

물곰은 극한 환경에도 살아남아 지구 최강의 동물로 꼽힌다. 물곰은 30년 넘게 물과 먹이 없이도 살 수 있다. 1948년 한 이탈리아 동물학자는 박물관에서 보관하던 120년 된 이끼 표본에 물을 붓자 그곳에 있던 물곰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보고했다. 2016년 일본 과학자들은 30년 전 남극에서 채취한 후 영하 20도로 냉동됐던 물곰이 해동되자 다시 살아났다고 발표했다.

물곰이 자외선을 받고 파란빛을 띠는 모습. 피부에 있는 형광 색소가 치명적인 자외선을 무해한 청색광으로 바꾼다./인도 과학연구소

우주에서도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동물은 10~20Gy(그레이) 정도의 방사선량에 목숨을 잃는데 물곰은 무려 5700그레이의 방사선도 견딘다. 유럽우주국(ESA)은 2007년 무인 우주선에 물곰을 실어 우주로 발사했다. 12일 후 지구로 귀환한 물곰들에게 수분을 제공하자 일부가 살아났다.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치명적 방사선에 견딘 생명체는 물곰 이전에 이끼와 박테리아밖에 없었다. 2020년 인도 과학자들은 물곰이 형광 색소를 방패 삼아 치명적인 자외선(UV)에 노출돼도 생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 사는 동물 중 외계 생명체로 가장 적합한 후보’로 물곰을 꼽았다. 2019년 이스라엘이 달에 보낸 무인 착륙선에도 물곰이 실려갔다. 달에 보낼 동물로 물곰을 택한 것은 역시 엄청난 생존 능력 때문이다.

물곰은 극한 환경을 만나면 몸을 공처럼 말고 일종의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다. 신체 대사는 평소의 0.01%로 떨어지고 특수 물질로 단백질 등 주요 부분을 감싸 보호한다. DNA 손상을 막는 항산화 물질도 대량으로 분비한다. 말하자면 씨앗 상태가 돼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달에 간 물곰도 지구로 돌아오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