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치명적 유전자를 가진 모기를 방사해 전염병을 일으키는 모기 개체수를 줄이는 실험이 첫 단계에서 성공을 거뒀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같은 성공 사례가 나오면 모기가 유발하는 다양한 질병을 예방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8일(현지 시각) “영국 옥시텍사(社)가 미국 플로리다에서 진행한 유전자변형 모기 방사 실험이 예상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옥시텍은 모기 방사 후 7개월 간 개체수를 추적한 결과 암컷 모기는 모두 성체가 되기 전에 죽도록 유도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미국 플로리다 키 제도(諸島)에서 유전자변형 이집트숲모기 500만 마리를 방사했다. 미국에서 유전자변형 모기를 야외에 방사한 것은 처음이었다.
◇암컷 알에만 치명적 유전자 전달
이집트숲모기는 전 세계에서 매년 4억명이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를 비롯해 황열병 바이러스와 치쿤구니아열 바이러스, 신생아에서 두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 등을 옮긴다. 암컷 모기가 피를 빨 때 병원성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간다. 살충제를 뿌려도 효과가 일시적이고 저항력을 가진 모기까지 나와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옥시텍은 수컷 모기에게 나중에 태어난 암컷만 죽이는 유전자를 집어넣었다. 이 모기가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치명적 유전자가 나중에 태어난 암컷에게 전달된다. 이 암컷은 성충이 되기 전에 죽는다. 사람 피를 빨지 않는 수컷 자손은 계속 암컷을 죽이는 유전자를 물려받고 성충으로 자란다. 결국 모기 개체수가 줄어든다.
연구진은 유전자변형 수컷이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해서 낳은 알 2만2000여개를 수집해 분석했다. 암컷 알은 모두 성체가 되기 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자외선을 비추면 해당 유전자를 가진 암컷 알은 형광을 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또 유전자변형 모기 방사는 예상한 기간과 범위에서만 효과를 보였다고 옥시텍은 밝혔다. 암컷을 죽이는 유전자는 2~3개월 동안만 모기 군집에서 유지됐고 이후 사라졌다. 해당 유전자를 가진 모기도 방사지역 400미터 밖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플로리다 키 제도 주민들은 뎅기열 환자가 계속 발생하자 2020년 주민투표를 거쳐 유전자변형 모기 방사 실험을 진행하도록 했다. 당시 33개 선거구 중 31개가 찬성했다. 미국 연방환경보호국(EPA)과 플로리다주도 옥시텍의 모기 방사실험을 허가했다.
옥시텍은 지난 3월 EPA로부터 올해 플로리다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추가 방사 실험을 하는 것도 허가받았다. 회사는 두 지역 정부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박테리아 감염 모기로 뎅기열 막아
물론 이번 실험이 실제로 뎅기열처럼 모기가 옮기는 바이러스 감염병을 감소시키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려면 엄청난 비용을 들여 모기 방사 지역과 일반 지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앞서 인도네시아에서는 모기 씨를 말려 뎅기열 환자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 2020년 비영리기구인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은 인도네시아에서 월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퍼뜨려 뎅기열 환자 발생률을 77%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박테리아를 가진 수컷이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나중에 태어난 알이 부화되지 못한다. 결국 모기 씨를 말려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한 것이다. 또 월바키아 박테리아는 뎅기열 바이러스의 복제를 차단하므로, 박테리아에 감염된 암컷 모기에게 물려도 뎅기열에 걸리지 않는다.
당시 인도네시아 가자 마다대의 아디 우타리니 교수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니컬러스 주얼 교수 공동 연구진은 40만 명이 사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24개 지역을 대상으로 월바키아균의 뎅기열 감소 효과를 실험했다. 12곳에는 월바키아균을 감염시킨 모기를 방사하고, 다른 12곳과 뎅기열 환자 발생률을 비교했다. 실험 기간 뎅기열 환자 400여명이 발생했는데 월바키아균을 넣은 모기를 방사한 곳은 뎅기열 환자가 다른 곳보다 4분의 1로 줄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