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80년을 살지만 기린은 수명이 24년에 그친다. 몸집이 크다고 수명이 짧은 것도 아니다. 몸무게 90톤이 넘는 북극고래는 268년을 산다. 왜 동물은 수명이 제각각일까. 과학자들이 유전자에서 답을 찾았다.
영국 웰컴 생어 연구소의 이니고 마르틴코레나 박사 연구진은 지난 1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동물의 수명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얼마나 빨리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세포에 고장이 자주 생기면 수명이 짧아지고 천천히 고장 나면 생체 시계도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평생 돌연변이 누적치는 같아
연구진은 생쥐와 벌거숭이두더지쥐에서 사람과 개, 고양이와 사자, 호랑이까지 포유동물 16종을 대상으로 세포에 생기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조사했다. 유전자는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을 좌우하는 설계도에 해당한다. 이곳에 오류가 생기면 자연히 몸이 망가지면서 노화가 일어난다.
분석 결과 쥐는 해마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800개씩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는 249개 정도이고, 사자는 160개, 인간은 47개였다. 놀랍게도 동물마다 생애 마지막에 누적된 돌연변이 수는 약 3200개로 비슷했다. 결국 차이는 속도에 있었다. 동물마다 주어진 돌연변이 숫자는 같지만 발생 속도에 따라 수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린과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서 잘 나타난다.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벌거숭이두더쥐는 몸길이가 13㎝이다. 아프리카 기린은 키가 5m를 넘는다. 둘은 몸무게 차이도 2만3000배에 이른다. 하지만 기린은 연간 돌연변이가 99개로, 벌거숭이두더지쥐의 93개와 비슷했다. 수명도 기린이 24년, 벌거숭이두더지쥐가 25년으로 거의 같다.
◇코끼리가 암 발생 적은 까닭은?
연구진은 “돌연변이가 암의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노화에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실험으로 처음 입증한 결과”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연구는 몸집이 큰 동물이 암에 잘 걸리지 않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암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쌓이면서 발생한다. 몸집이 크고 수명이 길면 세포분열도 늘어나 그만큼 돌연변이가 생길 위험도 커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끼리 비교하면 그렇지만 다른 동물을 보면 사정이 달랐다.
1977년 영국 옥스퍼드대의 리처드 페토 박사는 암으로 죽는 코끼리가 전체의 5%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몸무게가 코끼리의 70분의 1에 불과한 인간은 그 비율이 11~25%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페토의 역설’이라고 했다. 루마니아 바베시-볼리야이대의 오르솔리아 빈체 교수도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동물원에서 사는 동물 191종을 조사한 결과 몸집이 크고 수명이 길수록 암으로 죽는 비율이 낮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웰컴 생어 연구소의 알렉스 케이건 박사는 “고래는 사람보다 세포가 수조 개나 더 있어 세포분열 오류로만 따지면 어른이 되기 전에 암에 걸려 사라져야 한다”며 “그럼에도 큰 동물이 오래 산다는 점에서 느린 돌연변이 발생 속도가 역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란드 상어의 장수 비밀도 추적
연구진은 돌연변이 발생 속도가 모든 동물의 수명을 좌우하는지, 아니면 포유동물에만 해당되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인 그린란드 상어를 포함해 다양한 어류를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은 그린란드 상어의 수명이 400세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돌연변이 속도와 함께 여러 요인이 수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를테면 2015년 미국 유타대 연구진은 코끼리는 암 억제 유전자인 TP53이 20벌이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은 이 유전자가 한 벌밖에 없다.
그린란드 상어도 수온이 낮은 북극 바다에서 살다 보니 수명이 늘어났다고 추정됐다. 수온이 낮으면 신체 대사도 느리게 진행된다. 실제로 그린란드 상어는 한 해 1㎝씩 더디게 자란다. 그만큼 수명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온도가 낮으면 DNA 손상을 억제하는 유전자도 작동한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