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송윤혜

로봇 손의 감각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있다. 손끝에 닿는 감촉으로 어떤 물체인지 알아내고 딸기 표면의 작은 씨앗까지 감지한다. 국내외 과학자들은 다양한 센서를 적용해 사람처럼 촉감을 감지하는 로봇 손을 개발하고 있다. 정운룡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로봇이 사람과 함께 작업하려면 카메라만으로 주변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촉각을 더하는 것”이라며 “로봇 시스템을 단순화하기 위해 사람의 감각기관들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딸기 표면의 씨앗까지 감지

로봇 손은 시각과 촉각이 결합되면서 더 섬세해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 연구소(CSAIL)는 이달 초 열린 국제전기공학회(IEEE) 국제 콘퍼런스에서 “여러 감각 기능을 갖춰 사람의 손처럼 물체를 잡을 수 있는 로봇 손을 개발했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로봇 손 표면에 유연한 아크릴 소재를 붙였다. 아크릴 소재는 물체와 닿으면 변형이 일어난다. 손가락에 내장된 카메라가 이 변화를 촬영해 물체의 외형과 표면 거칠기, 가해지는 힘 등을 분석한다. 실제로 로봇 손이 딸기를 들고 있는 동안 표면의 씨앗까지 감지할 수 있었다.

MIT 연구진은 카메라 눈에 촉각 센서를 더해 물체의 기울어진 방향까지 파악하도록 했다. 덕분에 로봇 손은 와인 잔을 들었다 내려놓는 실험에서 한 번도 깨뜨리지 않았다. 앞으로 로봇 손이 무른 과일도 손상을 주지 않고 줍고 얼마나 익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사람의 감각기관을 모방한 로봇 손도 개발되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의 네이선 레포라 교수 연구진은 “사람의 손끝처럼 느낄 수 있는 로봇 손을 개발했다”고 ‘로열 소사이어티 인터페이스 저널’에 지난 5일 밝혔다.

연구진은 3D(입체) 프린터를 이용해 로봇 손가락 표면에 사람 피부처럼 골과 마루 구조를 구현했다. 레포라 교수는 “로봇 손을 통해 수집한 전기신호 기록은 사람의 신경신호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라며 “인공 피부를 실제 피부보다 더 정밀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람 피부처럼 즉각적으로 반응

국내에서도 로봇 손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포스텍 정운룡 교수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김성필 교수 연구진은 “사람 피부처럼 바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전자 피부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지난 2월 밝혔다.

기존 전자 피부는 센서에 수많은 전극이 부착돼 있고, 각각의 전극에서 오는 전기신호를 차례대로 측정해야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연구진은 사람의 피부처럼 전극에서 오는 신호를 한꺼번에 받은 뒤 신호들의 패턴을 분석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덕분에 반응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연구진은 전자 피부를 붙인 로봇 손에 쇠구슬을 굴리면 0.005초 만에 반응해 잡았다고 밝혔다. 정운룡 교수는 “앞으로 전자 피부가 손상된 사람의 피부 감각을 되살리고, 인간과 교감 능력이 있는 로봇에 사용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고현협 교수와 전기전자공학과 김재준 교수 연구진은 “사람의 동작, 촉감, 소리 등을 모두 인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귀의 달팽이관 구조를 모방한 인공 피부 센서를 개발했다. 달팽이관 기저막은 두께와 너비, 단단한 정도가 부위별로 달라 소리를 주파수별로 구분해 받아들 수 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사람의 동작처럼 느리게 반복되는 저주파 신호뿐만 아니라 빠르게 진동하는 소리와 촉감 같은 고주파 신호도 기계에 모두 전달할 수 있다. 센서가 인식 가능한 주파수 대역은 45~9000 Hz(헤르츠)로, 심전도부터 목소리까지 다양한 생체신호를 포함한다.

연구진은 인공 피부 센서를 햅틱(촉각) 장갑에 적용했다. 사람이 이 장갑을 끼고 손을 움직이면 로봇 손이 동작을 따라한다. 또 로봇 손에 인공 피부 센서를 붙여 유리, 종이, 실크 등 8가지 다른 물질의 질감도 93% 정확도로 구분했다. 고현협 교수는 “인공 피부 센서는 소리가 유발하는 진동도 감지한다”며 “소음 환경에서도 95% 정확도로 사람 목소리만 인식할 수 있어 소음 제거 기능을 탑재한 마이크로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