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의 한 동굴에서 쏟아져 나온 브라질꼬리박쥐 떼. 남미에 주로 살다가 온난화로 위쪽 미국 동남부로 서식지를 옮겼다./미국 어류야생동물보호국

남미에 살던 브라질꼬리박쥐가 최근 미국 동남부의 동굴에 집단 서식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자 박쥐가 서식지를 위도가 높은 곳으로 옮긴 것이다.

기후변화로 동물의 서식지가 바뀌면서 새로운 종간(種間) 바이러스 전염을 촉발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콜린 칼슨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50년간 동물 간 바이러스 전염이 1만5000건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코로나는 박쥐의 바이러스가 중간 숙주 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퍼지면서 유발됐다. 이번 예측은 결국 새로운 코로나 후보군이 1만5000건 새로 생긴다는 말이다.

◇종간 전염은 동남아·아프리카 고지대에 집중

연구진은 지금처럼 온난화가 지속된다고 볼 때 포유류 3870종의 서식지가 어떻게 변할지 모의실험을 했다. 온난화는 현재 국제 사회의 목표대로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 이내에서 일어난다고 상정했다. 가능한 모든 동물의 쌍을 만들고 이중 바이러스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진화단계에서 가까운 종들을 추렸다.

종간 바이러스 전염은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아래 세네갈에서 니제르, 수단에 이르는 사헬지대와, 인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집중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이전에는 기온이 오르면 동물들이 고위도 지역으로 수평 이동할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는 동물들이 온도가 낮은 고지대로 수직 이동하면서 종간 전염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 사이에 바이러스가 옮겨 다니면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종간 바이러스 전염이 가장 많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 지역은 생태다양성이 높을 뿐 아니라 인구밀집지역이기도 하다. 동물 사이는 물론 동물과 사람 사이 바이러스 전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2070년 세계 인구 밀집지역과 동물간 바이러스 전염 중심지. 인구 밀집도가 높을수록 파란색이 짙어지며, 동물간 접촉으로 바이러스 전염이 늘어난 곳일수록 붉은색이 짙어진다. 아프리카 적도지역과 인도, 동남아시아가 가장 위험한 곳임을 알 수 있다./미 조지타운대

연구진은 특히 포유류 종의 20%를 차지하는 박쥐가 종간 바이러스 전염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쥐는 날개가 있어 수백㎞씩 서식지를 옮길 수 있다. 동굴에서 수만 마리씩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바이러스가 퍼지기 쉽다.

박쥐는 바이러스 137종을 갖고 있는데, 이중 61종이 사람에 감염된다. 치명적인 출혈열인 에볼라를 비롯해 광견병, 니파병, 마르부르크병이 박쥐 바이러스에서 시작됐다. 이번 코로나 전에도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가 각각 사향고양이와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유발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박쥐의 바이러스가 이전에 없던 곳까지 퍼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시뮬레이션에서 에볼라바이러스의 숙주인 포유류 13종이 서식지가 바뀌면서 다른 동물과 2000건 이상 새로 만날 수 있으며, 이중 100건에서는 실제로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앞으로 에볼라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소말리아 반도에서도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화난 수산시장 판매 야생동물들. 2014년 호주 과학자가 찍은 사진과 2019년 코로나 대유행 이전 소셜미디어 웨이오에 올라온 사진이다./Weibo, Edward C. Holmes

◇야생동물 감시도 방역활동으로 추진해야

과학계는 기후변화가 전염병을 확산할 수 있음을 입증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스카일라 홉킨스 교수는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야생동물의 바이러스 공유가 갖는 위험이 얼마나 큰지, 또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정량적인 예측을 했다”고 말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케이트 존스 교수는 네이처지에 “기후변화, 토지 사용이 다음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에 얼마나 위험 요인인지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첫 걸음을 제공한 연구”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주로 삼림 파괴와 야생동물 밀거래가 인간과 동물의 접촉을 증가시켰다고 생각했다. 칼슨 교수는 “두 가지 경우로 인한 접촉은 실제 위험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브라질꼬리박쥐처럼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옮기는 야생동물이 나올 때마다 감시 활동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동물의 병원성 바이러스가 인간사회로 대량 유출되는 위험을 막기 위해 팬데믹 방역 대책에 야생동물 서식지 변화에 대한 감시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팬데믹 대응과 질병 감시도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