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두 달 만에 사망한 것은 돼지에서 사람에게 건너온 바이러스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異種) 장기 이식이 자칫 새로운 병원성 바이러스를 인간에 퍼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간하는 ‘테크놀러지 리뷰’지는 지난 4일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사망한 데이비드 베넷(57)의 몸에서 돼지거대세포바이러스의 DNA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조직 안에 잠복한 바이러스 찾지 못해
말기 심장병 환자인 베넷은 지난 1월 7일 미국 메릴랜드대학병원에서 바이오 기업 리비비코어가 제공한 돼지 심장을 이식받았다. 수술 직후 심장이 제 기능을 하면서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재활 치료도 받았지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두 달만인 지난 3월 8일 사망했다.
당시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지난달 20일 미국이식학회가 진행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베넷의 몸에서 발견된 돼지 바이러스가 갑작스런 병세 악화와 사망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돼지 심장 이식은 처음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베넷은 돼지 심장에 대해 면역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돼지 심장도 한 달 이상 정상 기능을 보였다. 그리피스 박사는 이식 수술 20일 후 베넷에서 돼지거대세포바이러스가 검출됐지만 워낙 수치가 낮아 검사 오류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피스 박사는 이식 수술 45일 후 베넷은 갑자기 중태에 빠졌고 검사를 해보니 돼지 바이러스 수치가 가파르게 상승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는 세미나에서 “이식 수술 후 20일째 바이러스는 아주 초기 상태였지만 눈 깜짝할 새 증식해 이 모든 것을 촉발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메릴랜드대학병원측은 수술 전 심장을 제공한 돼지에게 바이러스가 있는지 검사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검사는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만 검사해 잠복상태로 숨어있는 바이러스는 걸러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의 요아킴 데너 교수는 테크놀러지 리뷰에 “미국 연구진은 돼지의 주둥이에서만 바이러스를 검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바이러스는 종종 조직 깊숙이 숨어있기도 한다”며 “더 정확한 검사만이 이런 문제를 막을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데너 교수는 이미 2년 전에 돼지 바이러스가 이종 장기 이식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바이러스가 있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개코원숭이는 수주만 생존했지만, 바이러스를 제거한 심장을 이식하면 생존시간이 6개월 이상으로 늘었다. 연구진은 이식 수술 과정에서 면역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약으로 원숭이와 돼지의 면역체계를 모두 억제한 것이 돼지 바이러스를 급속하게 증식시켰다고 추정했다.
◇장기 부족 대안 vs. 전염병 유발 가능
이종 장기 이식은 만성적인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장기 이식 대기자는 현재 약 11만명이며 매년 6000명 이상이 이식 수술을 못 받고 숨진다. 이들에게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자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특히 미니 돼지가 이종 장기 이식에 안성맞춤이라고 꼽는다. 미니 돼지는 다 자라도 일반 돼지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몸무게는 60㎏으로 사람과 비슷하고 심장 크기도 사람 심장의 94% 정도다. 해부학적 구조도 흡사하다. 새끼도 많이 낳아 장기 대량 공급에 유리하다.
리비비코어는 돼지 심장이 인체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전자 10개를 교정했다. 먼저 DNA를 잘라내는 효소단백질인 유전자 가위로 면역 거부반응을 유도하는 유전자 3개가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또 인체의 면역 체계에 순응하도록 돕는 인간 유전자 6개는 추가하고 이식한 심장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성장 유전자 하나는 기능을 차단했다. 예상대로 이식 수술 직후 베넷에게 급성 면역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돼지 바이러스는 막지 못한 것이다.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의 제이 피시먼 박사는 테크놀러지 리뷰에 “베넷의 몸에서 나온 돼지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에 전염되지는 않는다”며 “나중에 인간 사회에 퍼질 위험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돼지 심장에 손상을 입혀 결국 이식받은 환자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지는 5일 동물이 걸리는 질병을 인간 사회에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은 이종 장기이식에 대한 기대감에 찬 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코로나도 박쥐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동물을 통해 인간에 퍼지면서 유발됐다는 것이다.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돌다리라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