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하는 식물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마치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로 사람의 건강을 원격 진료하듯 농업에도 농작물 상태를 실시간 측정하는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잎이나 줄기에 센서를 달면 식물의 수분 함량을 알아내고 기온 변화의 영향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식물 원격 진단 기술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잎, 줄기에 붙어 농작물 상태 감지
브라질 나노기술국립연구소 연구진은 “식물의 수분량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웨어러블 센서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ACS 응용 재료·인터페이스’에 5일 발표했다.
식물이 자라려면 적당한 수분이 필요하다. 물이 부족한 가뭄에는 잎이 타들어 가고, 물을 지나치게 많이 주면 잎이 누렇게 변한다. 눈으로 잎의 변화를 알면 이미 늦고, 오로지 농부의 감에 의존해 미리 대처해야 했다.
이전에도 수분량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들이 개발됐지만 잎에 잘 부착되지 않아 정확도가 떨어졌다. 연구진은 좁고 구불구불한 모양의 니켈 금속 전극으로 잎의 수분량을 측정했다. 니켈 전극은 구불구불한 구조 덕에 비바람에도 잎 표면에 강하게 부착됐다. 여러 전극을 콩잎에 붙여 실험해본 결과 잎이 마를 때 니켈 전극에서 더 큰 신호가 생성됐다.
연구진은 전극에서 수집한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실시간으로 수분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했다. 이를 활용하면 작물에 제때 물을 줄 수 있어 수확량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식물에 직접 삽입하는 센서도 있다. 스웨덴 린셰핑대 연구진은 실시간으로 농작물의 당 수치를 잴 수 있는 센서를 개발했다. 사람으로 치면 당뇨병 환자를 위한 혈당 측정기다. 센서는 트랜지스터를 기반으로 해 밑에 달린 전극을 식물에 꽂으면 된다.
당은 식물의 에너지원으로, 발달을 좌우한다. 연구진은 “센서로 최장 이틀 동안 실시간으로 식물의 당을 측정할 수 있다”며 “당 정보를 이용해 식물의 성장 조건을 최적화하거나 품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 연구진은 식물에 손상을 주지 않는 가느다란 바늘 센서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실리콘으로 만든 미세 바늘을 클로로포름 용액에 담그면 부드러워지는 원리를 이용했다. 연구진은 “미세 바늘은 식물을 해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상처 자국도 4일 이내에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 미세 바늘 센서는 줄기에 삽입돼 물과 열, 빛에 따라 달라지는 전류를 감지한다.
◇휘발 물질로 스트레스, 감염도 파악
식물이 받는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미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진은 “식물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측정해 실시간으로 식물의 스트레스와 질병을 감지하는 웨어러블 센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식물의 스트레스를 측정하거나 질병을 밝히려면 조직 시료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분석해야 한다. 이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려 제때 식물의 상태를 알 수 없었다. 연구진은 식물이 내뿜는 휘발 물질을 주목했다. 식물은 상황에 따라 휘발 물질을 다양하게 조합해 방출한다.
연구진은 식물에서 방출되는 특정 휘발 물질에만 반응하는 부착형 센서(패치)를 개발했다. 토마토 잎에 30밀리미터 길이 패치를 붙이고 물리적 손상을 입거나 토마토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에 감염됐는지 확인했다. 잎이 손상됐을 때는 1~3시간 이내에 휘발 물질의 변화가 감지됐다. 병원균 감지는 3~4일 정도 걸렸다.
연구진은 “식물의 질병을 빨리 구별할수록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며 “앞으로 센서 패치로 온도와 습도 등 다양한 환경 변화에 따라 휘발 물질이 바뀌는 것도 살필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