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이어 정신까지 회춘(回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앞서 젊은 피가 신체 나이를 젊게 했듯 이번에는 젊은 뇌척수액이 뇌를 회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의 토니 와이스-코리 교수 연구진은 1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젊은 생쥐의 뇌척수액을 나이든 쥐에게 이식해 기억력을 개선시켰다”고 밝혔다.
◇신경세포 보호막 늘고 기억력 향상
연구진은 생후 18개월 된 늙은 쥐의 발에 전기충격을 주면서 동시에 소리와 빛 자극을 줬다. 쥐는 이제 소리와 빛만 줘도 전기충격을 받은 듯 몸이 얼어붙었다. 공포기억이 생긴 것이다. 이후 생후 10주된 젊은 생쥐에서 뇌척수액을 채취해 나이든 쥐 8마리의 뇌에 주입했다. 10마리는 가짜 뇌척수액을 주입했다.
3주 후 전기충격 없이 소리, 빛 자극만 주는 기억력 실험을 했다. 젊은 쥐의 뇌척수액을 주입한 쥐는 40%가 공포기억을 되살려 몸이 얼어붙었다. 반면 가짜 뇌척수액을 주입한 쥐는 18%만 공포기억 행동을 보였다.
연구진은 “뇌척수액이 노화로 인한 뇌기능 감소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며 “뇌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기능을 개선할 방법이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뇌척수액은 뇌세포에 영영분과 신호전달물질, 성장인자를 제공한다. 혈액의 액체성분인 혈장과 같은 역할을 신경계에서 한다. 하지만 뇌의 노화과정에서 뇌척수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에서 젊은 쥐의 뇌척수액에 있는 성장인자가 나이든 쥐에서 신경세포 기능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젊은 쥐의 뇌척수액은 희소돌기아교 전구세포의 활동을 증가시켰다. 이 전구세포는 나중에 희소돌기아교세포가 돼 기억중추인 해마에서 신경세포를 수초로 감싸 보호한다. 나이가 들면 수초가 손상되고 신경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기억력이 떨어지고 인지기능도 약해진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기억력 향상 원리를 알아보기 위해 젊은 뇌척수액에 의해 어떤 신호가 증가하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SRF로 알려진 전사인자가 유전자 발현에 관여해 희소돌기아교 전구세포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든 생쥐의 해마에서는 이 전사인자가 줄어든다.
이와 함께 Fgf17이라는 성장인자도 확인했다. 이 역시 나이든 쥐에서 감소하는 물질이다. 이 성장인자는 SRF 신호전달을 유도해 회춘 효과를 내는 것으로 추정됐다. 실제로 나이든 쥐에게 성장인자를 주입하자 젊은 뇌척수액을 주입했을 때와 같이 희소돌기아교 전구세포 증가와 기억력 향상 효과가 나타났다.
◇기억중추에 작용하는 치매 치료제 가능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Fgf17이 나이든 뇌를 회춘시킬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미리엄 자와드키 박사와 마리아 레티넨 박사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논문에서 “이번 연구는 Fgf17이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약물을 바로 뇌척수액에 전달해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동물실험을 통해 젊은 피에 회춘 인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2005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피부를 연결해 피를 공유시켰더니 늙은 쥐의 근육과 간이 젊어졌다고 발표했다. 이후 혈액의 어떤 성분이 회춘 효과를 내는지 알아내려는 연구가 봇물을 이뤘다.
와이스-코리 교수는 앞서 젊은 피가 뇌까지 회춘시킬 수 있음을 알아냈다. 그는 지난해 12월 네이처에 운동을 많이 한 쥐의 혈액에 있는 단백질이 게으름뱅이 쥐의 뇌에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알카헤스트(Alkahest)라는 스타트업을 세워 혈장에 있는 물질을 치매에 걸린 쥐와 사람에게 주입해 인지기능을 회복시키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이제 젊은 피에 이어 젊은 뇌척수액까지 회춘 대열에 뛰어든 것이다.